각국 재정 상황달라 교착 상태
“유럽 미래 달렸다” 정상들 설득
평소 지론 꺾고 유연하게 대처
“앙겔라 메르켈(사진) 독일 총리가 유럽을 하나로 묶는다면 그것은 그의 마지막 가장 큰 유산이 될 것.”(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안드레아스 클루스)
최근 영향력이 위축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메르켈이 이달 들어 유럽연합(EU) 순회의장직을 맡게 되자, 클루스는 그의 상황을 ‘백조의 노래’(최후의 승부수나 마지막 작품을 이르는 말)에 비유하며 이같이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던 27개 EU 회원국 정상 모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경제회복기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노장’ 메르켈의 행보에 더욱 눈길이 갔던 것도 이 때문이다.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교착상태에 빠졌던 EU 경제회복기금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데에 메르켈 총리의 기여가 컸다고 분석했다. EU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7500억유로(약 103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에 합의했다.
당초 이틀 일정이던 정상회의는 90시간이 넘게 연장되면서 EU의 분열상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남유럽 국가들이 보조금을 늘려달라고 호소했지만, 부유한 북부 국가들은 자국 부담을 우려해 보조금 비중 축소를 주장하며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가 가장 극렬히 보조금 축소를 주장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의 동의를 얻어내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 WSJ에 따르면 당시 메르켈 총리는 뤼터 총리에게 “유럽의 미래가 달려있다”며 “남부 국가들이 파산하면 결국 우리 모두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유연한 태도 변화도 주목받았다. 메르켈 총리는 그간 EU가 특정 회원국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10여년 전 유로존 위기 당시 “빈국의 빚을 부국이 부담해선 안 된다”며 보조금 대신 대출금 형태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 같은 지론을 꺾어가며 합의를 유연하게 주도한 까닭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EU의 경제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EU는 회원국들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작년보다 9%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한 메르켈 총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 여전히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올해 말 예정된 집권 기민당 대표 선거와 함께 2021년 총리 임기를 마지막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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