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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90년대를 되살리는 화음, 메이트리…‘그냥 내게 오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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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김영석 히트곡 아카펠라로 재탄생시킨 메이트리

‘자극’과 ‘순수’ 사이 치열한 고민

인류 최초의 악기이자 궁극의 악기

목소리로만 빚은 화음, 벌써 20년


한겨레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 왼쪽부터 김원종, 임수연, 권영훈, 강수경, 장상인. 아카펠라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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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엄마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혼자 노래할 때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할 때, 엄마는 더욱 빛이 났다.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내는 소리에선 무언가 따뜻함이 느껴졌다. 엄마는 케이비에스(KBS)합창단 단원이었다. 어린 시절, 그런 엄마의 영향으로 어린이합창단 노래도 즐겨 들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빚어내는 ‘화음’의 소리골이 소년의 감각에 깊게 새겨졌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화학을 전공했다. 물질의 조성과 구조, 성질이나 변화 따위를 연구하고 배웠다. 공부하면 할수록 ‘나는 이것을 전공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지 않아서였다.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동아리 활동에 ‘올인’했다. 악기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로만 음악을 완성하는 아카펠라 동아리였다. 노래할수록 욕심이 생겼다. 동아리 활동을 넘어 제대로 해보고 싶은 생각에 2000년 사람을 모아 자신만의 팀을 꾸렸다.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의 시작이었다.

“벌써 20년이라니….” 팀을 만든 장상인(보컬 퍼커션)이 말했다. “돌이켜보면, 힘든 적도 많았지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은 절대 혼자서는 못해요. 각각의 소리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거죠. 사람의 목소리가 악기다 보니, 같은 노래라도 부를 때마다 새롭다는 점도 재미있고요. 다른 일을 했더라면 이렇게 재미있게 하지 못했을 거예요.”

메이트리는 ‘5월의 나무’란 뜻이다. 5월의 나무처럼 푸르고 싱그러운 마음으로 아카펠라를 대하자는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멤버는 리더인 장상인을 비롯해 강수경(알토), 김원종(베이스), 임수연(소프라노), 권영훈(테너) 등 모두 5명이다. 2018년 모스크바 아카펠라 페스티벌에서 2위를 차지했고, 2014년 세계합창올림픽에서 팝과 재즈 부문 금메달을 동시에 따는 등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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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원종, 임수연, 장상인, 강수경, 권영훈. 아카펠라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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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펠라 불모지에서 피어난 5월의 나무 같은 이들이 최근 정규앨범 <그대 내게 다시>를 발표했다. 김형석 작곡가의 1990년대 곡을 아카펠라로 재탄생시킨 앨범이다. 변진섭이 부른 ‘그대 내게 다시’와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 등 모두 10곡을 실었다. 김형석표 댄스곡인 1세대 아이돌 베이비복스의 ‘겟업’도 포함됐다. 아카펠라 레트로 음반인 셈이다.

앨범은 3년 전 김형석의 제안으로 빚어졌다. “내 곡들을 아카펠라로 만들어보면 어때?” 이 말이 시작이었다. “유재하 30주기 헌정 앨범이나 드라마 오에스티(OST), 헌혈송 등 그동안 김형석 작곡가와 꾸준히 작업을 해왔어요. 그 과정에서 저희가 하는 아카펠라에 관심을 가지신 것 같더라고요.”(권영훈)

하지만 곡을 고르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김형석의 곡은 무려 1천곡이 넘었다. 기준이 필요했다. “대중에게 친숙한 곡에 우선순위를 뒀어요. 사람들이 잘 아는 노래를 아카펠라로 불러야,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강수경)

유명 발라드를 아카펠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발라드는 리듬을 조금만 바꿔도 그 곡이 가진 감성이 사라져요. 원곡의 좋은 기억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 리메이크 작업에서는 원곡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김형석표 발라드의 섬세한 감성을 잘 살린 것 같아요.”(김원종)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꼽아달라고 하자, 모두 ‘그대 내게 다시’라고 입을 모은다. “아카펠라의 매력이 잘 묻어난 것 같아요. 슬프면서도 따뜻한 느낌도 좋고요. 노영심 작사가가 노랫말을 썼는데, ‘맨 처음 그때와 같을 순 없겠지만, 겨울이 녹아 봄이 되듯이 내게 그냥 오면 돼요’라는 가사로 대표되는 감성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해요.”(장상인, 김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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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 왼쪽부터 김원종, 임수연, 권영훈, 장상인, 강수경. 아카펠라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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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국 등과 달리 아카펠라는 국내에서 크게 대중화되지 못했다. 아카펠라 그룹도 1990년대 ‘인공위성’ 이후로 손에 꼽을 정도다. 메이트리가 고민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었다. “노래도 강한 자극성이 있어야 사람들이 소비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신기함, 신선함을 줄 수 있을까가 숙제예요.”(강수경) 반면, 임수연의 생각은 달랐다. “아카펠라 하는 사람들이 그런 자극을 위해 목소리를 극도로 변형해 완벽한 악기처럼 소리를 내려고 하더라고요. 그럴 거면 그냥 악기를 쓰지 왜 사람이 소리를 낼까…. 악기 소리를 모방하되, 순수한 사람의 소리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우리의 최종 목적이 돼야 하는 게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이들은 자극과 순수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그 고민의 목표는 하나였다. 자신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음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것. 이를 위해 메이트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가지런히 모아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연습을 매 순간 하고 있었다. 인류 최초의 악기이자, 궁극의 악기로 빚는 화음은 문득, 경건해 보였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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