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검찰청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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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두 번째 검찰 고위 간부 인사가 이뤄진 이후 현직 검사가 내부망에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이번 인사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도한 수사가 잘못된 것이고 ▶‘거악 척결’을 검찰의 본질적 기능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인사권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취지다.
박철완(48·사법연수원 27기) 부산고검 창원지부 검사는 10일 오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인사권자가 이번 인사를 통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검찰권의 행사 주체이면서 인사권의 객체인 검사들은 이런 메시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이번 인사가 검찰 구성원들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 봤다”며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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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자, 인사 통해 검찰 조직에 철학 주입”
박 검사는 “인사권자는 인사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검찰 조직에 주입한다”며 “구성원들은 인사를 계기로 삼아 토론과 노력을 통해 본질적 가치를 수정하거나 심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검사는 이번 인사에 대해 2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는 “윤 총장이 주도한 수사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잘못된 지점이 방식인지 결론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두 가지를 모두 지적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적었다. 앞서 진행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 수사 등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앞으로 검찰은 경찰이 주도하는 수사 활동을 사후적으로 통제·정리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특히 직접수사 업무를 더 이상 검찰이 할 일로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소위 ‘거악의 척결’을 검찰의 본질적 기능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으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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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화법으로 내면의 가치 바꾸라고 요구”
박 검사는 “이러한 메시지는 검찰 구성원들이 그간 본질적 가치로 배우고, 내면화해 온 가치와 상당 부분 상충된다”며 “인사권자가 이처럼 직설 화법에 가까운 방식으로 구성원들에게 내면의 가치를 바꾸라고 요구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박 검사는 자신을 비롯한 검찰 구성원들이 이같은 주제를 생각해보지 못했으며 검사직의 본질, 사법 영역을 지키기 위한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인사에 대해 “살면서 맞닥뜨리는 여러 메시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하게 그 의미나 크기를 평가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서울 서초구 누에다리에서 바라본 대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 및 서울중앙지검의 전경.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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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로 법률가 양심 파는 일 없을 것” 동조
일부 검사들은 박 검사의 글에 동조하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다. 정희도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인사에 초연할 수는 없겠지만, 인사 때문에 검사들이 법률가의 양심을 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김석우 서울고검 부장검사는 “검사 스스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면 어떤 곳에 근무하는지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라고 적었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검사의 글과 댓글을 두고 여러 의견이 분분하게 제기되고 있다. ‘인사에 큰 의미를 두지 말고, 차분해지자는 것’이라는 분석과 ‘이면에는 비판의 뜻이 담겨 있다’는 추측 등이 함께 나온다.
한 현직 검사는 “박 검사의 진의가 정확히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인사에 의미를 두지 말자는 게 표면적인 내용으로 보인다”며 “중의적으로는 이번 인사에 대한 비판 취지도 함께 담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친정권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검찰 내 핵심 요직을 차지한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윤 총장은 지난 3일 신임검사들에게 “국가와 검찰 조직이 여러분의 지위와 장래를 어떻게 보장해 줄 것인지 묻지 말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어떻게 일할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기 바란다. 저와 선배들은 여러분의 정당한 소신과 열정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윤 총장이 검찰 구성원들에게 ‘좌천성’ 인사에 연연하지 말고, 소신을 가질 것을 독려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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