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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사설] 의료급여 부양의무제 존치, 무색해진 ‘포용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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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016년 1월27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광화문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당 창당 준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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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10일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년)을 확정했다.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2022년까지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지만,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 일정을 아예 제시하지 않았다.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며, 2017년 8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2차 종합계획에 반영하기로 한 바 있다. 정부가 약속을 어긴 것보다 ‘포용적 복지’의 취지가 크게 퇴색한 것이 한층 실망스럽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자녀와 배우자의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을 제한하는 제도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이후 드넓은 복지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비판을 지속해서 받아왔다. 저소득층일수록 자녀나 배우자와 관계가 끊어진 경우가 많은데도,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수급 대상에서 배제해왔기 때문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부조를 가족에게 떠넘기는 것은 근대 복지제도의 기본 원리에도 어긋난다.

시민사회의 줄기찬 요구에 밀려 박근혜 정부는 교육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이와 달리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를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주거급여의 기준을 폐지한 데 이어, 이번에 생계급여의 기준까지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공부조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의료급여의 경우, 기준을 폐지하면 수급자가 크게 늘 것으로 보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조금 완화하는 수준에서 그쳤다고 한다. 현실적인 재정 부담을 모르지 않지만, 건강 빈곤층의 실태 또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의료급여 수급자 비율(2.8%)은 의료 영리화의 선두인 미국(10~12%)에도 크게 못 미친다. 우리나라 빈곤층 비율이 17.4%인 걸 고려하면 의료급여 사각지대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당뇨병 유병률이 각각 8.5%와 14.5%인 데서 보듯이, 소득 간 건강 격차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몸이 아파 일을 못 함으로써 건강 불평등이 삶 전반의 불평등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여럿이다.

정부는 2021년도 ‘기준 중위소득’ 인상을 2.68%로 묶는 등 복지정책에서 잇따라 머뭇거리고 있다. 코로나 위기로 재정 부담이 가중됐지만, ‘포용적 복지’도 ‘포용적 성장’의 한 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취약계층이 무너지면 둘 다 멀어지는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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