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악화에 우편투표 논란… 예측 불가능성 높아진 미 대선
강인선 부국장 |
세계가 손을 놓고 11월 초 미국 대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따라 대응 방식이 극과 극으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없고, 북한은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의욕이 없을 것이다. 중국도 선거철 미국의 거센 대중 공세의 진의를 굳이 파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대선을 아무리 돌아봐도 이렇게 중요한 대선이 또 있었을까 싶다. 그것은 미국민들에게도, 미국의 동맹국에도, 미국의 적대국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전쟁에 버금가는 전대미문의 복합 위기 한가운데 있다. 안으로는 확진자가 500만명이 넘는 코로나 감염증 위기 속에서 경제 불황과 인종 문제로 심화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밖으로는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동맹은 일부 망가뜨렸고, 기후 변화와 디지털 시대 기술 변화 등 급격한 흐름을 이끄는 새로운 구상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최근 전문가들과 미국 대선 관련 토론을 하던 중 미국이 '내란'에 준하는 갈등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2000년 대선 때 플로리다주 재개표 사건에서 보았듯, 미 대선 과정이 어이없이 선로를 이탈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제도 미비로 인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코로나와 경제 위기에 복잡하기 짝이 없는 미국 선거 제도가 뒤엉켜버리면 대법원이 뛰어들어 상황을 정리하는 수준으로 해결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선거 연기, 결과 불복, 이에 따른 소송전, 극단적으론 내전 수준의 갈등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2020년 대선이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일까?"라는 칼럼을 썼다. '자유롭고 공정한 투표와 평화로운 정권 이양 전망은 둘 다 불확실하다'는 부제를 달았다. 개발도상국이나 갓 독립한 신생 국가의 얘기가 아니다. 프리드먼은 트럼프 지지자와 바이든 지지자 모두 우편 투표 결과를 각각 다른 이유로 신뢰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의 종말이고 또다른 내전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될 수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니라고 했다.
이 배경엔 강퍅하게 변해버린 미국 정치 환경이 있다. 미국은 나와 타인의 건강을 위해 마스크 쓰는 것까지 정치색을 입혀서 싸우는 나라가 됐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자신의 책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오늘날 미국에선 "모든 집단이 공격받는다고 느끼고 다른 집단의 공격 대상이 됐다고 느낀다. 일자리나 기타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자격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썼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집단 간의 제로섬 경쟁이 된다"고 봤다.
미국 유권자들은 지난 2008년 대선 때부터 '공직이나 군 출신에 백인 기독교도이며 결혼한 중년 남자'를 대통령으로 뽑는 낡은 기준을 버렸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며 처음으로 유색인종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뽑았고, 2016년엔 분노한 백인 노동자층이 주축이 돼 공직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부동산 재벌 연예인 트럼프를 선택했다.
민주당이 온라인 전당대회를 열어 바이든 전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지명했다. 앞으로 두 달여는 음모론과 코로나 상황 악화, 우편 투표 논란, 중국이나 러시아 또는 북한의 선거 개입 가능성 등 돌발 변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지난 대선의 경험을 떠올리면 여론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부담이다. 미국은 어떤 나라가 되려는 것일까. 미 유권자의 선택이 이렇게 중요한 선거도 없었던 것 같다.
[강인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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