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방식·가치관 주목
한일관계 경색 와중에 한국과 대립 발언
외교정책 직접 관여 적어 '베일'
"아베 정권 계승" 관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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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커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사고방식이나 역사관 등에 관심이 쏠린다. 스가는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 후 줄곧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거의 매일 기자회견을 했으며 일련의 발언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회견 중 발언은 아베 정권의 노선과 궤를 같이했으며 한국에 대해 각을 세우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특히 회자하는 발언 중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저격한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에 관한 언급이다. 2013년 11월 19일 스가는 안중근 표지석 설치를 위한 한국과 중국의 움직임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 “우리나라(일본)는 안중근에 관해서는, 범죄자라는 것을 한국 정부에 그동안 전해왔다”며 표지석이 “한일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중국에 안중근 기념관이 개관하자 “우리나라의 초대 총리를 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말해 한국과의 역사 인식 차이를 실감하게 했다. 2018년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는 “일본 정부의 설명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극히 유감”이라고 반응했다.
최근에는 일제 강점기 징용 문제를 다룬 한국의 사법 절차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서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강제 매각될 경우 일본의 대응에 관해 “방향성은 확실히 나와 있다”(TV 출연 발언)며 보복 조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관련 기업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일본 기업의 정당한 경제 활동 보호 관점에서 온갖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계속 의연하게 대응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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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한국과 맞서는 내용의 발언이 많았다. 다만 스가는 일본 정부 대변인이고, 한일 관계가 경색된 국면에서 나온 발언들이라서 이를 스가의 사고방식과 동일시 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그가 과거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만류하거나 일부 정치인이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할 때 주의를 촉구한 점 등에 비춰보면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하지 않게 노력할지도 주목된다.
총리 부재 시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관방장관으로 장기 재직해 최근 수년간 외국을 방문한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대외 활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아 스가의 외교 정책 방향이 어떻게 될지는 베일에 싸여 있는 분위기다. 산케이신문은 스가가 총리가 되는 경우 ‘위기관리 내각’으로서 아베 정권을 계승하는 것이 기본이 될 것이라고 2일 관측했다.
외교 정책 수완은 “미지수”이며 일본이 중시하는 미일 관계를 심화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신문은 전했다. 일각에서는 스가는 독자 지지 기반이 약해 다른 파벌의 지원을 받아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각 세력의 이해관계를 절충하며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스가는 1948년 아키타현의 한 농가에서 스가 와사부로(2010년 별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와사부로는 전쟁 중 남만주철도에서 일했고 만주에서 패전을 맞은 후 아키타현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했다. 지역 특산 ‘아키노미야(秋ノ宮) 딸기’를 유명하게 만든 인물이다.
스가는 고교 졸업 후 도쿄로 단신 상경해 박스공장이나 쓰키지 시장 등에서 막노동을 하다 통상보다 2년 늦게 호세이대 법학부에 입학했다.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마치고 전기설비 회사에 취직했으나 정치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해 1975년 중의원 의원이던 오코노기 하치로의 비서가 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오코노기의 선거구는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浜)였고 아키타 출신으로 아무 지연이 없었던 스가는 11년간 비서로 근무한 후 두 차례 요코하마(橫浜)시 의원을 지내고 1996년 10월 만 47세인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외조부가 총리를 지냈고 외무상 경력의 부친 지역구를 물려받은 아베나 3대 세습 정치인이 이시바에 비하면 스가는 속칭 ‘흙수저’인 셈이다.
스가는 아베 총리가 건강 악화 등으로 인해 1차 집권기(2006년 9월 26일∼2007년 9월 26일·366일) 1년 만에 사퇴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재기를 촉구하고 지지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아베 총리가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로 복귀할 때 간사장 대행으로 발탁됐고 같은 해 12월 내각 발족 후 줄곧 총리관저의 2인자로 군림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아베 총리와의 불화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국가안보정책 담당상,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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