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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plus] 우편투표 폭증에 美대선 시계제로…11월3일 밤, 승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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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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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3일 자정(현지시간) 무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합주 우세를 근거로 대선 승리를 선언한다. 우편투표(mail-in vote) 개표가 절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보수매체와 지지자들도 트럼프 대통령 승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며칠 뒤 경합주 여러 곳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우편투표에 힘입어 근소한 차이로 역전한다. 승자가 뒤바뀌게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승복하지 않는다. 가상 시나리오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일방적 승리를 하지 않는 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높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우편투표 비중이 대폭 늘어나는 것이 '카오스' 배경이다. 도대체 미국은 어떻게 선거를 치르기에 혼란이 불가피한지 살펴본다.

미국 선거 역사상 최고의 박빙 승부는 2000년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대결이었다. 일반 투표에선 고어 후보가 부시 후보를 54만표 차이로 눌렀지만 총 538명인 선거인단 득표에서 부시 후보가 5명을 더 얻어 대권을 거머쥐었다. 선거 당일 주요 방송사들은 선거인단 29명이 걸린 플로리다주 출구조사를 근거로 고어 후보 승리를 점쳤지만 개표 결과 부시 후보가 신승했다.

우편투표 등에 대해 부분 재검표가 이뤄졌고 표차는 537표로 더 줄었다. 민주당은 전수 재검표를 요구했고, 공화당 반대로 결국 연방 대법원으로 공이 넘어갔다. 결국 대선이 끝나고 36일이 지난 뒤에야 연방 대법원이 전면 재검표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판결했고, 고어 후보는 승복했다. 이 같은 상황이 올해 대선에선 경합주 곳곳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투표장을 꺼리는 분위기인 데다 민주당이 장악한 주정부들이 종전보다 우편투표 편의성을 높이면서 투표율 제고에 나섰기 때문이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단일 선거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들과 달리 주별로 선거관리가 제각각이다. 선거 당일에 현장 기표소에 가지 않는 방법도 부재자투표, 우편투표, 사전투표 등이 존재하고 허용 범위도 주별로 상이하다. 우편투표도 천차만별이다. 모든 유권자에게 자동으로 투표용지를 발송하는 이른바 '보편적 우편투표' 제도를 택한 주는 네바다·캘리포니아 등 9개주와 워싱턴DC 등 총 10곳으로 주로 민주당 텃밭이다. 투표용지는 아니지만 우편투표를 장려하기 위해 신청서를 모든 유권자에게 미리 보내는 주는 위스콘신 등 13곳으로 늘어났다.

더 복잡한 문제는 언제까지 선거관리위원회에 도착한 우편투표 용지를 유효한 것으로 판단하느냐다.

각주 규정을 분석해보니 미국 50개주 가운데 28개주는 올해 선거일인 11월 3일까지 도착한 용지를 인정한다. 이 가운데 루이지애나주는 11월 2일까지 도착해야만 하고, 인디애나주와 앨라배마주는 3일 낮 12시까지 도착한 경우만 유효표로 인정해준다. 나머지는 3일 밤늦게 도착하더라도 괜찮다는 의미다. 문제는 4일 이후에 도착한 우편투표도 우체국 소인이 3일 이내로만 찍혀 있으면 카운트하는 22개주와 워싱턴DC 등 23곳이다. 이들 지역에는 전체 선거인단의 58%인 313명이 배정돼 있다. 전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만 살펴보면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는 6일, 미네소타와 네바다는 10일, 오하이오는 무려 13일까지 도착분을 유효표로 인정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경합주로 분류되는 지역들이기 때문에 표차가 매우 적고, 개표까지 늦어지면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미국에서 가장 늦게 도착한 우편투표까지 수용하는 주는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우위인 캘리포니아로 소인이 3일자라면 20일까지만 도착하면 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연일 우편투표가 부정투표로 변질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안정성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다만 민주당도 개표 지연을 우려해 가능한 한 빨리 우편투표에 참여하고, 사전투표가 가능한 지역에선 이 방식도 이용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최대 1억9000만명에게 우편투표에 참여할 권리가 이미 부여됐다. 2016년 대선에선 유권자 1억2884만명이 실제 투표에 참여했는데 이 가운데 우편투표는 약 3300만명(25.6%)이었다. 올해는 우편투표 비중이 50%를 상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처럼 우편투표 비중이 커지면 대선 당일 개표 결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위를 기록하는 현상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이를 두고 민주당 계열 선거 데이터 업체인 '호크피시'의 조시 멘델손 대표는 최근 액시오스 인터뷰에서 '붉은 신기루(Red Mirage)'라는 표현을 썼다. 적어도 선거 당일 밤에는 공화당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개표 현황판이 물들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기우'에 그칠 수도 있다. 대선 승패를 좌우하는 경합주에서 트럼프 대통령, 또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넉넉한 우위를 보이며 선거인단 270명을 확보해버리면 게임은 끝이 난다. 하지만 미국의 선거 전문가들은 최소 수일간 선거 결과를 확신하지 못할 개연성이 더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1%포인트 안팎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핵심 경합주에서 우편투표 비중이 클 경우 패배한 측에서 재검표를 요구할 가능성도 매우 크기 때문에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재검표 결과에 따라 승부가 뒤집히는 일까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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