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미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네소타, 버지니아, 와이오밍, 사우스다코타 등 4개 주에서 18일 조기투표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9월 29일, 10월 15일, 10월 22일에는 대통령 후보 간 토론이 개최된다. 곧이어 우편투표가 전국적으로 시작될 것이고 11월 3일 선거 당일 현장투표가 있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중 누가 승리해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할 것인가? 차기 대통령의 대(對)한반도 정책은 어떻게 펼쳐질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누가 당선되는 것이 유리할까?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미국의 59번째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현지시간으로 9월 18일 본격 시작됐다. ⓒGetty Imag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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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결과의 전망?
지금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 바이든 후보가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조사기구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가 확정된 이후 바이든이 우위를 놓친 적은 없으며 코로나19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등으로 10% 가까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가 꾸준히 그 격차를 줄여 지난 16일 보수 성향 여론조사기구 라스무센의 조사에서는 오히려 1% 앞서기도 했다. 물론 이는 오차범위 내이고, 거의 모든 다른 조사에서는 바이든의 우세가 여전하다.
미국 대선의 특성상 전국적 여론보다는 각 주의 여론을 분석해서 누가 선거인단 270명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더 신뢰할 만한 지수다. 이 선거인단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의 우세가 두드러진다. 현재 바이든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표밭인 캘리포니아와 뉴욕뿐만 아니라 콜로라도와 버지니아에서도 우위를 누릴 것으로 예상되어 선거인단 212~90명을 확보하고 있다. 이에 비해 트럼프는 켄터키와 아이오와 같은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선거인단 수가 많은 텍사스와 오하이오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확보한 선거인단 수는 125~204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현재 경합우세로 평가되는 주는 물론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같은 경합주에서 모두 승리해야 하고, 민주당 경합우세로 평가되는 주들도 몇 개는 빼앗아야 한다.
물론 여러 변수 때문에 여론조사만을 믿을 수는 없다. 첫째, 선거까지 남은 40여 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특히 최근 트럼프의 추격세가 두드러지는 반면 바이든의 지지세는 주춤거린다. 전국에 생중계될 대선후보 간 토론이 지지세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이미 지난 대선에서 여론조사를 통한 예측은 참패를 경험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예측했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지난번과 다르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양 후보의 입장을 분석하며 트럼프가 승리할 시나리오와 바이든이 승리할 시나리오를 모두 준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하겠다.
미 대선 결과와 한반도의 미래
트럼프 대통령은 신현실주의·신중상주의 외교노선을 추구해왔다. 중국을 현 국제질서를 바꾸려는 '수정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중국의 국력이 더이상 강해지기 전에 제지하겠다는 신현실주의가 다면적인 중국과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또 국가의 힘을 이용해 미국의 경제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중상주의가 동맹뿐만 아니라 국제기구와의 관계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는 재선 이후에도 이러한 기본적인 노선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지난 선거에서의 공약들을 잘 이행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으므로 재선되면 '미국을 위대하게 유지'하겠다는 슬로건이 이를 잘 드러낸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에의 의존 종식'을 통해 중국과의 분리를 심화하고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을 계속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끊임없는 전쟁을 종식"하고 해외에 파견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하면서도 군사력은 확장하겠다고 공약한다. 또 동맹국들에 '공정한 분담'을 요구할 것이라는 입장도 견지한다.
트럼프의 공약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관점에서는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북한에 최대의 압박'을 가한 것을 성과로 제시하면서도,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과 '한반도의 비핵화 조치'에서 논의한 것을 구체적 업적으로 내세운다. 이번에 다시 당선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았지만 정상외교를 통해 이러한 성과를 확대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끊임없는 전쟁의 종식'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방위부담을 줄이려 하는 기본적인 방침과 맞물려 한국전쟁의 종식이 트럼프 2기의 어젠다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전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방향이다. 반면, 미 재무부와 유엔의 제재 조치들을 '최대의 압박'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러한 자세를 바꾸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북과의 협상에서 당장 첫 단추조차 풀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존 볼턴의 회고록이나 밥 우드워드의 신간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그 이전에 정부 간 정책을 조율하지 않을뿐더러, 그 이후에도 정상 합의에 따라 정책을 조정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3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더라도 '쇼'에 그칠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한편 바이든은 미국의 전통적 외교노선이라고 할 현실주의적 국제주의로 되돌아가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근시안적인 국가 이익을 추구하느라 오히려 미국의 이익을 손상시켰다는 비판에서 출발한다. 동맹국들에 비현실적 방위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독일에서 한 것처럼 일방적으로 미군을 감축해 미국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는 뜻이다. 또 이란과의 핵합의나 파리조약에서 탈퇴한 것처럼 외교와 다자주의 국제기구를 무시한 것도 미국에는 손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력 및 장기적 국익에 근간한 현실주의를 견지하되 국제기구 및 동맹과의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민주당의 '브랜드'인 인권과 민주주의의 깃발을 내세우는 가치의 외교를 복원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관점에서는 이 또한 양날의 칼인데, 우선 구체적으로 언급된 두 가지 긍정적 사항에 대해 짚어보자. 한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등 미국의 전통적 동반자 관계를 회복하고 갱신하겠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또 북에 대해서는 비핵화를 위해 "미국의 협상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동맹국 및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과 지속적이고도 조율된 캠페인을 시작하겠다"며 협상 및 다자적 접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외교의 위상을 제고하고 '영구적 전쟁들'을 종식하겠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평화적 종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시사한다. 반면 한국전쟁 종전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동맹 강화'를 공약한 것은 현 정전체제를 강화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협상의 목적도 "비핵화된 북한"으로서 '한반도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다. 1990년대부터 6자회담은 물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에서 공통으로 구축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적에서 후퇴해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또한 한국전쟁의 종식 및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조율되지 않은 채 비핵화만 실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무엇을 할 것인가?
결국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존 바이든 후보는 모두 한반도 평화에 기회와 한계를 동시에 부여하는 셈이다. 한국은 당연히 기회를 살리고 한계를 넘어설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특히 주목할 점은 우선 양 후보 모두 '북핵 문제'를 공약에 포함할 정도로 중요시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당선되든 이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미국의 중요한 안보 사안이다. '북핵'을 풀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풀 수 있는 과제로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기에서도 양 후보는 공통적인 기회의 창을 열고 있다. 모두 '끊임없는 전쟁' 또는 '영구적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전쟁에 미국이 끌려 들어가 있다는 미 국민의 염증을 반영한 것인데 이를 한국전쟁의 종식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한국의 몫이다. 한국전쟁 종식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이와 조율된 조치들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룰 수 있음을 설득하는 것도 한국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동맹을 혁신하여 미국과 한반도의 관계를 21세기에 맞도록 발전시키자는 참신한 비전도 나와야 할 것이다.
지난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 민주당 정부와 공화당 정부가 '북핵 문제'를 다루며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이 있다.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도 트럼프 정부도 '외과적 타격' '코피 전술' '핵 타격' 등을 고려했지만 현실성 없음만 확인했을 뿐이다. 경제제재도 '역대 최강'을 되풀이해서 '최대의 압박'까지 강화됐지만 북의 핵군사력은 오히려 강해졌다. 그나마 협상을 하는 동안 북의 핵능력 동결이라도 가능했고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제는 협상을 구체화하고 그 결과를 하나씩 실행하기 위해 준비해야 더이상 바보 노릇을 거듭하지 않을 수 있다. 구체화된 평화적 해결책을 만들고, 정부 각 부처가 이를 이행할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청와대만 움직여서는 되지 않는다. 통일부를 포함해서 국방부와 외교부 등 모든 부처가 겉으로 보이는 변화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 정책들을 추진해야 한다. 여러 연구기관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미국의 싱크탱크 및 시민사회와 더 깊고 넓게 대화할 준비를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촉구한 것이 차기 미국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비핵화를 추진할 새로운 전략적 포석의 일환이기를 바란다.
준비한 자만이 승리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 지금부터.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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