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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범죄 스릴러에 담긴 생태주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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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민음사 ·1만5000원

폴란드와 체코 접경 지역.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동물들 말고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고원의 작은 마을에서 한 사람이 죽는다. 사냥한 사슴고기를 먹다 뼈가 목에 걸린 사고사인 줄만 알았던 죽음을 시작으로 이상한 살인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시신들의 주변에는 사슴 발자국이 찍혀 있고 주인공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2009년 작이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어 토카르추크 세계의 입문서로 맞춤이다. 암호와도 같은 책의 제목은 주인공 두셰이크가 사건의 한가운데서 중얼거리는 말로, 신비롭고 예언적인 시와 회화작품을 발표했던 18세기 영국 작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구절이다. 블레이크의 시는 이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방향키이자 소설의 정조, 주제와도 직결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든 장은 “믿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진실의 단면이다”(<지옥의 격언>), “새장에 갇힌 울새의 붉은 가슴이/ 천국을 온통 분노에 빠뜨린다”(<순수의 전조>) 등 블레이크 시 구절로 시작되며 이야기가 나아가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독자들도 예상하겠지만 이야기의 종결점은 단순히 범인의 확인이 아니다. ‘사냥 달력’을 만들어 동물 학살을 정당화하는 사람들, 권위적인 국가권력, 불법거래가 횡행하는 농장 등과 맞서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에 대한 열망을 담아낸다. 주인공은 문명사회에서 용도가 다한 늙고 가난한 여성이다. 그가 끝까지 사건을 추적하면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은 연약한 존재들의 강력한 연대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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