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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슈 세계 속의 북한

북한에 부는 `디스코`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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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청년절 경축 야외공연 '청춘들아 받들자 우리 당을'이 지난 28일 평양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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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북한 시즌2-5] '북한 사람들은 어떤 춤을 언제 어디서 출까'라는 질문에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TV나 뉴스에서 접하는 북한 '군중무도회' 장면들일 것이다. 얼마 전 코로나19 상황에서 8월 28일 청년절을 맞아 평양 도심에서 대규모 무도회가 열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도회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는 조선옷(한복)을 차려입은 북한의 젊은이들이 경직되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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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절 경축 야외공연 '청춘들아 받들자 우리 당을'이 지난 28일 평양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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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야기하는 춤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도회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일상에서 북한 주민들이 넘쳐 나는 흥을 어떻게 분출하는지에 대한 독특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을 소개하려 한다. 이는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북한의 많은 지역에서 공유하는 문화이다. 일상에서 춤판이 만들어지는 계기는 주로 봄 소풍, 여름철 바다·계곡과 같은 피서지이다. 또한 8월 15일 광복절 같은 명절에는 아파트 단지마다, 동네마다 춤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명절날 동네마다 록음기(CD플레이어), 증폭기(스피커)를 틀어 놓고 동네 사람들과 오가는 사람들까지 자유롭게 춤판을 만드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앞마당에 춤판을 펼친다고 예를 들면 그 아파트에서 성능이 가장 좋은 집의 증폭기를 바깥에 설치한다. 정전이 일상인 북한의 특성상 증폭기는 항상 배터리에 연결해 사용한다. 음악을 틀어 놓으면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게 되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든다. 이러한 춤판은 대체로 초저녁에 시작해 밤 12시까지 놀기도 하고 분위기가 좋으면 새벽 2시까지 지속된다.

이 춤판의 흥미로운 점은 남녀노소 모두가 한곳에서 춤을 춘다는 것이다. 특히 10대 후반부터 20대 청년들에게 인기가 상당하다. 한국처럼 클럽이나 노래방 문화가 없는 북한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춤판은 일일 야외 클럽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성별을 나눠 춤을 추던 젊은이들이 현장의 열기가 조금 뜨거워지면 슬슬 관심 있는 이성의 앞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쌍을 이루고 춤을 추기도 한다.

또한 동네마다 그 열기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놀새(춤 잘 추고 인기 있는 사람을 이르는 북한말)들은 여러 춤판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물 좋은 곳을 찾아 여러 곳으로 다닌다는 말이다. 물 좋은 곳의 기준은 노래도 재미있어야 되고 젊은 사람이 많아야 된다. 2019년까지 북한에서 살다가 올해 한국에 온 A에 따르면 최근 춤판에서 인기 좋은 음악은 모란봉악단 반주 음악과 청봉악단 반주 음악이라고 한다.

이런 장소에서 추는 춤은 격식도 없고, 안무도 없으며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감만 있다면 몸치도 환영이다. 춤을 잘 추는 사람도 인기가 있지만 몸치들의 춤을 보면서 구경꾼들은 배꼽 빠지게 웃기도 한다. 춤판에서 추는 춤을 흔히 막춤이라고 부른다. 막춤에도 시대별로 유행하는 춤 동작이 있다.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탄 찍기 춤'은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탄을 찍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최근에 남녀노소 가장 유행하는 춤은 데스코(디스코)라고 한다.

먹고살기도 힘든 북한 주민들이 춤판을 벌인다니 가능한 일이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에게도 흥이 있다. 그 흥을 분출할 수 있는 장소인 춤판을 국가 주도적인 것이 아닌 동네 주민들 자생적으로 어떠한 장을 만든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는 잠시나마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음악에 몸을 맡기려는 북한 주민들의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할 수 있는 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성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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