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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아무튼, 주말] 뜯지도 않은 새 제품이 반값? 반품·재고 상품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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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리퍼브가 뜬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에서 일하고 매끼 챙겨 먹으며 운동도 하고 공연, 영화를 보는 게 일상이 되면서 매일 쓰는 가구와 가전 제품, 생활용품은 물론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집콕 생활을 위한 넓은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 간편 조리를 위한 에어프라이어와 고화질 TV, 집안 분위기를 바꿔줄 조명까지 위시 리스트가 늘어간다. 구매 비용에 대한 부담도 그만큼 커졌다. 필요한 제품을 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구매처를 찾아야 했다. 가격이 싸다고 성능과 디자인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리퍼브(Refurb)’ 매장이다.

리퍼브는 ‘refurbished’의 준말. 우리말로 하면 손질한 상품 정도가 된다. 성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외관상 흠집이 있는 상품이나 구매자의 단순 변심 등으로 반품된 상품, 매장에 전시됐거나 재고로 쌓여 있던 상품 등을 새롭게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새 제품이나 다름 없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성능 좋고 말끔한 제품을 싸게 ‘득템’할 수 있어 온라인에서도 인기다. 코로나 시대, 새 제품과 중고 제품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리퍼브의 세계.

◇흠집 나면 어때, 싸고 성능 좋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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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반품이나 전시 상품, 흠집이나 오염 있는 리퍼브 상품을 최대 80% 할인해 판매하는 이케아 광명점의 '알뜰코너'. 이케아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등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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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테리어 좀 해봤다는 사람들에게 이케아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가구부터 인테리어 소품, 생활용품 등을 취향대로 골라 직접 조립해 집이나 공간을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도 메리트다. 면적 5만9000㎡에 달하는 거대한 이케아 광명점에서 이케아 마니아들이 득템하는 곳은 따로 있다. 흠집이나 파손, 오염된 제품이나 매장 전시 제품, 포장이 훼손된 제품, 단종 제품 등을 판매하는 ‘알뜰코너'다. 제품 상태에 따라 정상가에서 최대 80% 할인된 가격에 소파와 침대, 수납장, 의자, 테이블, 조명, 쿠션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주부 박재영(45)씨는 “알뜰코너에서 구입한 가구로만 올여름 딸아이 방을 꾸몄는데 작은 흠집이나 찍힌 부분은 막상 잘 보이지도 않고 제품 디자인과 성능에 문제가 없어 선뜻 구매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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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광명점 '알뜰코너'에서 50% 할인 판매 중인 매트리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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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코너 재고는 하루에도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언제 어떤 제품을 구매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운이 좋으면 매장에 전시 중인 제품을 리퍼브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김지훈 이케아 광명점 리커버리 팀리더는 “알뜰코너는 필요한 가구를 알뜰하게 구매해 활용하는 단골 고객들이 자주 찾았는데, 코로나 이후 홈퍼니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알뜰코너를 찾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알뜰코너’는 이케아 광명점을 비롯해 고양점, 기흥점, 동부산점에서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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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올랜드' 매장. 가전과 가구, 생활 소품, 유아용품, 식품 등 리퍼브 상품을 한자리에서 직접 살펴보고 구매할 수 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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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와 가전 등으로 대표되던 리퍼브 시장은 이제 다양한 품목과 형태로 확장하고 있다. 지난 6월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이천점에 리퍼브 전문 매장 ‘올랜드’가 문을 열면서 아웃렛 쇼핑을 하며 리퍼브 제품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게 됐다. 올랜드 이천점은 면적 1160㎡ 규모로 유명 가전과 가구, 생활용품, 식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정상가에서 30~7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침대나 소파부터 냉장고와 TV, 청소기, 커피머신, 핸드블랜더, 전자레인지 등 매장에 진열된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상태를 꼼꼼히 확인할 수 있다. 흠집 난 제품도 있지만 아예 뜯지 않은 새 제품도 많다. 과자와 음료수, 라면 등 식품도 저렴하게 판매해 부담 없이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주부 한송이(29)씨는 “아울렛에 왔다가 우연히 매장에 들어왔는데 상태도 좋은 데 가격이 저렴해 리퍼브를 다시 보게 됐다”며 “다음에 필요한 가구나 가전이 생기면 매장에 와서 살펴볼 생각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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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올랜드' 매장에 할인 판매 중인 리퍼브 상품이 다양하게 진열돼 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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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은 지난해 10월 롯데아울렛 광명점에 ‘리씽크’와 롯데아울렛 광교점에 ‘프라이스홀릭’에 이어 지난 4월 롯데 프리미엄아울렛 파주점에 ‘프라이스홀릭’ 등 리퍼브 전문 매장을 입점시켰다. 코로나 확산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침체에도 리퍼브 매장의 월평균 매출은 올랜드 2억원, 리씽크 1억1000만원에 이른다.

◇리퍼브 쇼핑도 이젠 온라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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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산 '리씽크'의 재고 창고.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리퍼브 상품이 창고에 가득 쌓여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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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브 쇼핑도 이제 언택트가 대세다. 온라인 쇼핑으로 간단하게 원하는 제품을 구매한다. 재고 전문 온라인 쇼핑몰 ‘리씽크’는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새 상품부터 사용감이 있는 상품을 재단장한 리퍼브, 품질에는 이상 없으나 다양한 이유로 반품된 반품 재고 등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지난 18일 찾은 330㎡ 규모의 리씽크 고양 일산 재고센터에는 온라인 주문으로 판매될 리퍼브 제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리씽크몰은 홈쇼핑과 백화점 등 기업에서 나온 제품을 대량으로 매입하고 손질해서 상품으로 내놓는다. 기업에선 악성 재고를 처리하고 소비자들은 가격 대비 퀄리티 높은 제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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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씽크는 홈쇼핑과 백화점 등 기업에서 나온 제품을 대량으로 매입하고 손질해 판매한다.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상품을 발송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물류 창고의 모습.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리씽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노트북, 태블릿PC 등 IT 기기. 최근 코로나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돼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8월 24일부터 9월 7일까지 노트북 매출은 직전 2주보다 2배로 늘었다. IT 기기를 비롯해 리씽크의 전체 매출도 코로나 발생 전(지난해 11월~올해 1월)과 발생 후(올해 2~4월) 매출과 거래 건수가 각각 20%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몰이지만 직접 제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데 일산 재고센터에선 노트북과 TV, 가구 등을 당일 재고에 따라 제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리퍼브 상품을 판매하는 기획 행사도 열린다. CJ몰은 매월 마지막 주 ‘스크래치 위크’ 행사를 연다. 미개봉 반품, 제조 과정 중 흠집이 발생한 제품 등을 30~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티몬은 매월 24일을 ‘리퍼데이’로 정하고 기획 상품전을 열고 상시로 리퍼브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리퍼창고’를 운영한다.

리퍼브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라인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위메프의 올해 4~5월 리퍼브 상품 거래액은 2018년 같은 기간보다 5배 증가했다. 리퍼 상품을 찾는 고객이 늘면서 취급 상품 수도 14배 늘어 현재 판매 중인 리퍼 상품은 약 1만개에 달한다. 위메프 관계자는 “최근 디지털, 가전 제품의 프리미엄화로 신제품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리퍼 상품을 찾는 고객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먹거리도 알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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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는 대놓고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는 브랜드를 '어글리러블리'를 론칭했다. 상품의 질에는 문제 없지만 외관상 못생겼단 이유로 폐기되는 제철 농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사진은 어글리러블리 고구마. /11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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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브에 대한 관심은 먹거리로도 확장했다. 품질은 좋은데 못생기거나 흠집이 났다는 이유로 버려지던 농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푸드리퍼브’다. 못난이 감자, 못난이 사과 등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농산물이 이제는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됐다.

못생긴 B급 농산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엔 한 예능 프로그램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12월 SBS ‘맛남의 광장’을 통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에게 강원도 못난이 감자 판매를 부탁하면서 이마트에서 30톤을 판매한 일이다. 못난이 감자는 이틀 만에 완판됐다. 못난이 감자의 완판 행진 이후 이마트는 못난이 왕고구마, 못난이 왕양파, 못난이 홍로 사과 등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 중이다.

11번가는 대놓고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올해 4월 론칭한 ‘어글리 러블리’다. 맛은 우수하지만 외관상의 이유로 출하되지 못한 지역 농협과 농업회사 법인들의 제철 농산물을 어글리 러블리 브랜드로 판매한다. 4월 론칭 이후 9억2000만원 이상의 판매액을 올렸다. 현재 고구마와 천혜향을 판매하고 있으며 추석 선물세트로 선별된 물량 외 모양은 예쁘지 않아도 맛은 동일한 강원도 고랭지사과, 익산배 등을 판매할 예정이다. 이달부턴 비늘이 벗겨졌지만 크기가 큰 삼치와 우럭 등 수산물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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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오더'는 가까운 음식점, 편의점, 마트, 백화점 등의 유통 기한 임박 상품과 마감 세일을 알려주는 모바일 앱이다. 매장에선 재고나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를 줄이고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식도락을 즐길 수 있다. / 라스트 오더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보던 마감 세일도 푸드 리퍼브의 일종. ‘라스트오더’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과 마감 세일을 알려주는 모바일 앱이다. 마감 세일로 당일 만들거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저렴하게 판매, 소진해 버려지는 재고와 음식 쓰레기를 줄인다. 이용자 입장에선 저렴하게 가까운 동네 식당이나 카페, 대형마트, 백화점, 편의점 등의 식도락을 즐길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라스트오더 이용자 수는 2.5배, 판매량은 6배, 다운로드 건수는 4배로 늘었다. 문치웅 사업운영총괄은 “마감 세일로 구매하는 음식이 정가 상품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실제 구매해 보니 맛과 질의 차이가 없어서 재구매로 이어지고 마감 세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했다.

☞리퍼브(Refurb)란?

‘Refurbished’의 준말로 우리말로 하면 손질한 상품 정도가 된다. 성능에는 문제 없지만 외관상 흠집 있는 상품이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상품, 전시 상품이나 재고 등을 새롭게 손질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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