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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美 ITC 배터리 판결 연기, LG-SK 분쟁에 새 변수...재계 "끝장 싸움은 중국만 유리, 국가경제 위해 대승적 합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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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이 3주 늦춰지면서 양사의 소송전에 새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 전지 영업 비밀 침해 소송을 맡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25일(현지 시각) 10월 5일로 예정됐던 최종 판결 일정을 같은 달 26일로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ITC는 LG화학이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ment)’을 내렸고, 다음달 5일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었다. 조기패소 결정 당시 ITC는 영업비밀침해 소송 전후의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이 증거 훼손 및 포렌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모독 행위 등을 했다고 판단했다.

ITC가 최종 판결 연기 이유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최종 판결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면 중단된 양 사의 배상금 합의가 재개될 시간을 벌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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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LG화학은 "ITC에서 진행 중인 다른 소송들도 최종 결정 등의 일정이 연기된 것으로 보아 코로나 등의 영향으로 일정이 밀려 순연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앞서 ITC에서 진행 중인 다른 소송들도 코로나에 따라 일정이 최대 한 달 이상 연기되고 있어 양 사의 소송도 자연스럽게 미뤄졌다는 것이다.

◇ 미국 포드자동차, 조지아주 정부 "공익을 위해 SK 지지" 한목소리

하지만 코로나 여파와 별개로 SK이노베이션을 일방적으로 제재하는 판결이 현지 고용창출 등 미국 정치와 경제에 불리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ITC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TC가 다음달 SK 측의 패소를 확정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부품과 소재를 미국으로 들여올 수 없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가동을 목표로 미 남부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데, 수출금지 조치를 당하면 이 배터리를 사용해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인 미국 포드와 독일 폴크스바겐이 사업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포드는 이 부분을 강조하며 ITC에 의견서를 제출, SK이노베이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의견서에서 포드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기술력이 부족하지 않았으며, 포드의 전기트럭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해 공급사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포드는 또 "배터리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자동차를 만들 수 없고, 일자리 또한 감소해 공익을 저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가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 조지아주 정부도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SK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SK는 미국 배터리 사업에 26억달러(약 3조원)를 투자해 조지아주 잭슨 카운티 커머스시에 전기차 배터리 1, 2공장을 건설 중이다. SK는 지난 21일 조지아주 1공장 생산에 대비해 내년까지 1000명 이상의 현지 숙련 인력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하고 채용 절차를 시작했다.

앞서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ITC보낸 서한에서 "ITC 조사 결과가 조지아주, 나아가 미국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주의 깊게 평가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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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하고 있는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SK배터리아메리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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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C의 SK 제재는 대선 경쟁하는 트럼프, 바이든 모두에게 부담

일자리를 포함한 경제적 문제가 변수로 작용하면서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ITC가 패소 결정을 내리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K의 대규모 투자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 된 조지아주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초박빙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바이든 후보도 ITC가 SK를 제재하는 것을 반길 수 없는 입장이다.

ITC의 최종 판결이 나오면 미국 대통령은 60일 이내에 ITC 결정에 따른 수입금지 조치 등을 내릴지 이를 거부할지 결정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일자리 창출을 가장 우선시하는 특성상 SK가 패소하더라도 공장 유치는 그대로 진행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롯데그룹이 루이지애나에 31억달러(약 3조7000억원)을 투자해 에탄크래커(셰일가스를 이용한 에틸렌 생산) 공장을 짓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백악관에 초청해 직접 감사를 표할 정도로 미국 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재계 "한국경제 위해 LG, SK 소송전 대신 합의해야" 촉구

최종 판결이 미뤄지면서 LG와 SK 양측은 협상시간을 벌었지만,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각자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업계는 최종 판결 전에 양사가 금전적 배상을 통한 합의에 이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으나, 양사가 요구하는 배상 금액의 격차가 상당해 지난달부터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LG화학은 "ITC의 조기 판결은 뒤집힌 적이 없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도 없다"며 "이번 판결 연기도 코로나 여파일 뿐, 결과에 영향을 줄 만한 사안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SK 측은 "법조계 인사 등의 분석을 종합할 때 ITC가 예비 판결에 대해 '수정 지시'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SK가 최종 패소 판결을 받더라도 LG와 합의만 하면 수입금지 등의 제재는 풀릴 여지가 있어 양사의 합의 시도는 막판까지 계속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가경제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면서 "급성장하는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기업끼리 소송전을 벌이며 다투는 행위는 글로벌 경쟁사인 중국 기업에게 이득이 될 뿐이란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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