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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캄보디아서 일하다 걸린 독감으로 사망, 법원 “업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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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 행정법원 전경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해외 현지 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독감에 걸렸으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캄보디아 공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不) 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11월부터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의 공장에서 자재관리자로 근무했다. 그해 12월 7일 A씨는 독감에 걸렸고, 약 한 달 동안 회사 의무실에서 받은 해열진통제를 복용했다

이후 증상이 악화한 A씨는 2018년 1월 9일, 11일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현지 병원이 구내염 등으로 진단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이 더 악화한 그는 그달 13일 귀국해 국내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했지만 한 달 뒤 급성 호흡곤란증후군으로 인한 폐렴으로 사망했다.

A씨의 아내 B씨는 “남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공단은 “A씨의 단기 과로가 확인되지 않고, 업무환경이 인플루엔자 또는 폐렴을 유발할 만한 상황이 아니므로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B씨는 이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A씨는 캄보디아 특유의 독감 유형에 감염돼 면역이 없는 관계로 쉽게 회복하지 못했고, 현지에서 초기에 제대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해 증상이 악화했다”며 남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근로공단과 다르게 A씨의 사망과 현지 업무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일하던 공장은 시내와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편이 없어 회사 차량을 이용하지 않으면 외출도 할 수 없었다”며 공장 내에서 독감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해당 공장에는 600명이 넘는 캄보디아 현지인이 근무했고, A씨는 밀집된 환경 속에서 이들과 불가피하게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A씨가 국내에서 근무했다면 보다 조기에 독감 진단을 받아 치료제를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캄보디아에서 적절한 치료 기회를 갖지 못하고 최초 증상 발현 후 귀국해서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는 사정이 망인의 질병 악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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