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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책 읽는 대통령이 책방 말살하다니 옳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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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공개편지로 도서 정책 비판

“문체부, 도서정가제 개악 시도...'靑 지시라 어쩔수 없다''”

“'청와대의 지시사항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문체부의 답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도서정가제가 폐지되거나, 개악을 단행한다면 저희 같은 책방들은 줄줄이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책방을 중심으로 살아났던 지역 경제와 상권마저도 후퇴하게 될 것입니다. 책 읽는 대통령,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일을 시도한다는 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경남 통영에서 출판사와 서점을 운영하는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써 정부가 추진 중인 도서정가제 개정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정 대표는 ‘출판문화’ 최근호에 실은 글 ‘멀리 통영에서 책 읽는 대통령님께 올리는 편지’에서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도서정가제를 뒤흔드는 것은 코로나19로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이자 많은 청년들의 일터인 책방과 소규모 출판사의 줄폐업으로 이어져 온라인 대형서점과 대형 출판사의 독과점만 심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판문화’는 출판계 대표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내는 월간지다.

2014년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는 책값에서 할인(적립) 비율을 최대 15%로 제한하고 3년마다 개정을 재검토하게 돼 있다. 문체부는 새로운 3년이 시작되는 오는 11월 도서정가제를 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개정안은 출간된지 오래된 책(구간·발행 후 36개월, 마지막 주문이 들어온지 12개월 지난 책)에 대해서는 추가 할인을 허용하고, 전자책 할인 비율을 20%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판계는 이에 반발해 지난 8월 도서정가제 사수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지난 24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조선일보

출판계 대표들이 24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문화국가도 무너집니다'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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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대표는 편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와 맺은 인연을 먼저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 통영시가 철거하려던 150년 전통 장인들의 공방을 보존하겠다고 약속했고, 당선 후 공방을 문화재로 등록하도록 해 보존될 수 있었다면서 “그때 우리는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는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졌다는 사실에 얼마나 자부심이 컸는지 모릅니다”라고 했다. 김정숙 여사는 2017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처음 나간 남해의봄날 부스에 찾아와 “'남해의봄날, 잘 알고 있어요'라며 응원해주셨고, 그때 여사님의 연설을 가슴에 새겼습니다”라고 정 대표는 썼다.

이어 실망을 토로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민주정부, 책 읽는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행하지 않았던 출판문화를 파괴하는 정책을 만들 리가”라면서 “소상공인을 살리고,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도시재생에 수조 원을 투자하는 나라가 지역 문화와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는 책방들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외국 사례와도 비교했다. 프랑스는 동네 책방을 지키기 위해 10억원 이상을 10년 넘게 무이자로 대출하고, 동네책방들만 책값을 5% 할인하고 무료 배송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신간이든 구간이든 할인할 수 없게 하고, 독일은 온·오프라인 서점을 공급가로 차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정 대표는 “도서정가제를 없앤 중국이 전통 서점들의 몰락과 출판사들의 경영 악화로 다시 도서정가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정은영 대표는 2010년 서울을 떠나 통영에서 출판사 남해의봄날을 세우고 2012년부터 50여종 책을 출간해오고 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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