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3 (월)

이슈 2020 미국 대선

美 대선 이후로 밀린 ‘배터리 판결’…LG-SK ‘합의’ 변수되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본사 건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 최종판결이 또 다시 미뤄졌다. 소송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에 더해, 최종 판결 연기가 누구한테 더 유리한 지 따지는 두 회사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최종판결 결국 연말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26일(현지시간), 당초 이날로 예정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최종판결을 오는 12월10일 내리겠다고 공지했다. 판결 대상은 지난해 4월 LG화학(이하 LG)이 전기차 배터리 핵심공정기술 등을 빼내갔다며 SK이노베이션(이하 SK)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다. 최종 판결은 이달 5일에서 26일로 한 차례 연기됐는데 이번에 다시 조정되면서 총 67일 미뤄졌다. ITC측은 연기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최종 판결을 기다리며 한국 시간으로 27일 새벽까지 밤을 새우다시피 한 두 회사는 재연기 소식에 허탈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업계에선 LG승소 가능성을 높게 봤다. ITC가 올해 2월 일찌감치 SK ‘조기패소’를 결정한데다, 지난 2010~2018년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있어선 예비 판정대로 최종 결정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LG와 SK, 모두 대선 경합지에 공장



하지만 결정이 연거푸 미뤄지자 ITC가 미국 내 상황 탓에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LG는 미시간주 홀랜드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운영중이고, 오하이오주 로즈타운에 약 2조4000억원을 들여 제너럴모터스(GM)와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SK역시 3조원 가까이 투자해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 두 곳을 설립중이다.

중앙일보

LGvsSK 배터리 소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만약 SK가 최종 패소하면 배터리 부품과 소재를 미국에 들여올 수 없고 미국 사업이 어려워진다. 미국 입장에선 공장 중단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미국 내 완성차 업체들의 피해 등 경제적 영향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당장 테네시주에 생산 공장이 있는 폴크스바겐은 2022년, 오하이오주에 공장이 있는 포드는 2023년부터 기존 LG배터리와 함께 SK배터리도 공급받기로 돼 있다. SK가 미국사업을 접게 되면 배터리 수급차질로 자칫 전기차 북미시장 사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11월3일(현지시간) 미국 대선도 변수다. 오하이오주와 조지아주는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접전을 벌이는 경합주다. 미시간주와 오하이오주는 ‘이 곳을 뺐는 자가 이긴다’고 하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일자리 증감에 매우 민감하다. 모두 LG와 SK의 공장이 있는 곳들로, ITC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 ITC가 SK의 영업비밀 침해는 인정하되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들어 미국의 이익에 피해가 덜한 쪽으로 처분을 내리거나 ▶미국 수입 금지 등 치명적인 규제를 면제해 주거나 ▶규제 처분을 내리되 수 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등 절충안을 내 놓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두 회사는 일단 현재 상황을 자사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 LG 관계자는 “예비 판정을 뒤집을 생각이었다면 공청회 등으로 공공이익을 타진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SK 관계자는 “이렇게 장고하는 자체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여러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판정 연기가 합의 가속화하나



하지만 두 기업간에 합의에 관한 공감대도 감지된다. 더 적극적인 건 SK다. SK는 이날 오전 6시쯤 “소송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LG도 오전 7시30분 “경쟁사가 진정성을 가지고 소송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제3의 업계 관계자는 “소송전이 길어져서 좋은 기업은 하나도 없다. 시간이 더 생긴 만큼 각자가 유·불리를 따져 합의 카드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지식재산권 전문가인 김광준 KAIST 지식재산대학원 교수는 “과거 코오롱과 듀퐁사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삼성과 애플의 특허 침해 소송의 사례에서 보듯 결국은 합의할 가능성이 통계상으론 98%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ITC가 예비 판정에서 사실상 승소-패소를 판단한 것이니 합의가 쉬울 수 있다”며 “이번 기회에 경쟁사의 지재권을 쉽게 취하려는 관행을 없애고, 우수한 연구·개발(R&D) 인력이 그에 맞는 처우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국가 산업 발전은 차치하고서라도 소송에 들어가는 수천억원의 비용과 막대한 시간을 R&D에 쓰는 게 두 회사의 자체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