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추도사
디자인 혁신, 남미·아프리카 개척
기가 기술 상용화도 몇년 앞서 예측
지금도 그때 적은 수첩 꺼내보곤 해
“기회 선점해야 성장 기회” 늘 강조
이건희 1942~2020
이건희 삼성 회장(앞줄 왼쪽 둘째)이 2002년 삼성 본사에서 열린 ‘디지털 신제품 전시회’에서 진대제 당시 삼성전자 사장(왼쪽 첫째)으로부터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사내 전시회를 통해 경쟁사의 첨단 전자제품을 현장에서 접하도록 하면서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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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끈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중앙일보에 고 이건희 회장 추도사를 전해 왔다.
제가 어떤 분보다 존경했던 경제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초석을 놓아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지금처럼 국내 경제나 국제관계 등에서 어려울 때 벌떡 일어나서 현명한 조언을 해주길 기다렸는데 결국 영면하시게 돼 황망합니다. 조문하러 가 영정 사진을 뵈니 눈물이 쏟아집니다.
예전에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진군, 요새 일본에 가보니 이런저런 새로운 게 나오고 있는데 알고 있나?” “몇 년 뒤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니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해라” “잘 모르면 그걸 할 수 있는 인재라도 키워야 해”. 칭찬도 많이 해주셨지만, 가끔은 따끔하게 혼을 내주시던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이탈리아 유명 디자이너 모셔와라”
이 회장은 누구보다도 탁월한 선견지명을 가졌습니다. 지금도 가끔 과거 사장단 회의 때 이 회장의 지시사항과 사업진단 등을 적어 놓은 수첩을 꺼내 보곤 합니다. 당시에는 ‘회장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 왜 이렇게 생각을 할까, 이게 과연 맞는 것인가’라고 의아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7~10년이 지나면 그 말이 현실이 됐습니다.
삼성그룹 회장 취임 후인 1988년, “앞으로 디자인이 중요하니 수백만 달러를 주더라도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를 데리고 와 디자인 혁신을 해라”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디자인이 약하면 상품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론에 따라 ‘삼성디자인센터’가 만들어졌고, 이는 추후 삼성이 미국·유럽에서 상품 디자인상을 휩쓰는 첫 단추가 됐습니다. 91년 “앞으로 남미·아프리카의 후진국에서도 마케팅할 날이 올 거다”며 도입한 지역 전문가 제도 덕분에 삼성은 선진국뿐 아니라 제3세계 개발도상국에도 브랜드 영업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92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64메가 D램(왼쪽)과 꿈의 반도체라 불리던 1기가 D램(1996년 개발). [중앙포토] |
무엇보다 이 회장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 과감한 판단을 내린 ‘승부사’였습니다. 89년 4메가 D램 개발 방식에서 ‘스택’형(위로 쌓는 형태)과 ‘트렌치’형(파 내려가는 형태) 중 어느 것을 채택할지를 두고 고민할 때였습니다. IBM·TI·NEC·히타치·도시바 등 거의 모든 경쟁업체는 트렌치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스택형이 유리하다는 기술진의 의견을 과감히 수용했습니다. 트렌치형을 택한 해외 업체들은 몇 년 후 경쟁력을 잃었고,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2000년이 되기 몇 년 전부터 “앞으로 1기가 D램을 많이 사용하는 시점에는 무선통신 같은 새로운 ‘기가 기술’이 상용화할 것이고, 기업뿐 아니라 사회·정치에도 많은 변화가 올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기가 기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지만, 아마 스마트폰의 등장과 요즘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 관련 변화에 대한 예견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때 무선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이걸 옛날 진공관으로 만들면 10층짜리 건물이 필요하고 원자력 발전소 하나를 옆에 세워야 작동시킬 수 있다”고 해서 실제로 그런지 바로 종이를 꺼내 전력 소모를 계산해 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한국의 기업인들이 인정을 받지만, 80~90년대만 해도 세계 유명 인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일찌감치 글로벌 재계 인사뿐 아니라 세계 유력 정치인, 문화·스포츠 인사들과 두루 만나면서 삼성, 나아가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삼성 브랜드가 세계 초일류가 되는 물꼬를 텄습니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 회장은 “최고의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서 모셔오라”며 인재 확보를 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습니다. 89년 초 대만 출장 당시 유력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말단 임원인 필자를 부르더니 일어나라고 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 회장은 “저 양반이 우리 회사의 ‘600만 불의 사나이’다. 삼성의 반도체를 크게 키울 사람이니 기억해 달라”고 소개했습니다. 당시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동기부여를 통해 회사의 인적자원을 키우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나중에 이해했습니다. (진 전 장관은 이후 삼성전자의 16메가 D램 독자 개발, 64메가·128메가·1기가 D램 세계 최초 개발 등을 이끌었다.)
“신기술 투자에 돈을 아끼지 말라”
이 회장은 ‘기회 선점’의 중요성을 간파했습니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투자해서 기회를 선점해야 성장의 기회가 오고,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는 말은 사장단 회의 때 늘 강조하던 말입니다. 이 밖에 “실패해도 되니, 신기술 투자에 돈을 아끼지 말라”는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 “몇 년 뒤에 회사가 망할지 모르니 항상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경영’ 등 고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경영학 교과서와 같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영면하셨지만, 당신의 혁신 리더십과 불굴의 도전정신은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이 회장의 타계에 진심 어린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전 삼성전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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