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트럼프-도심 바이든 "같은 주, 딴 세상"
2008년 오바마 당선 빼곤 줄곧 공화당 승리
엎치락 뒤치락…격차 1%P 미만의 초박빙
인구 열 명 중 두 명 흑인, 투표율이 변수
26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중소도시 개스토니아 곳곳에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이광조 JTBC 영상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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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남서부의 중소 도시 개스토니아. 주유소와 패스트푸드점이 몰려 있는 중심가 네거리 한 쪽의 가게에 각양각색의 '트럼프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기원하는 '트럼프 2020', 트럼프의 단골 구호인 '법질서(Law and Order)'를 상징하는 푸른빛의 성조기, 여기에 극우의 상징인 남부 연합기까지 꽂혀 있었다. 이곳에서 트럼프 기념품을 파는 백인 여성 수전 해리슨은 며칠 전 바로 눈앞에서 트럼프 대통령 일행을 봤다며 자랑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이곳 개스토니아 시립공항에서 대규모 유세를 열었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이곳 주민을 비롯해 테네시·조지아 등 인근에서 모인 사람이 무려 2만3000명이었다. 인구 7만명 남짓의 도시에서 열린 행사치곤 엄청난 규모였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개스토니아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에는 2만3000명이 모여 스탠드를 가득 채운 채 그의 연설을 들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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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캠프도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행사장에 빼곡히 사람들을 채워 넣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중에 "지금도 밖에 만 명 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해리슨 역시 행사장에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물론 마스크 쓴 사람도 찾기 어려워 언론에선 '슈퍼 전파자 모임'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오히려 "들어가서 다행"이라고 했다.
해리슨은 한 달 전 직장을 잃은 뒤 남편과 함께 트럼프 기념품 장사에 나섰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코로나19에서 맞서 경제를 지키지 못했다는 원망은 없어 보였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기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트럼프 모자와 티셔츠를 각각 20달러씩 주고 샀다. '미국을 더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문구가 적힌 제품 안쪽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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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경계 두고 완전히 다른 세상"
하지만 개스토니아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대도시 샬럿으로 진입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샬럿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본사 등이 있는 대표적인 금융 도시다. 어느 순간 트럼프 지지 푯말이 사라지더니 곳곳에서 바이든-해리스를 지지하는 응원 문구가 눈에 띄었다.
시민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고, 곳곳엔 손 세정제가 설치돼 있었다. 평생을 노스캐롤라이나에 살았다는 제이슨 그래프도 "시 경계를 두고 전혀 다른 세상이 된 것 같다"며 "원래도 도심과 외곽의 차이는 있었지만 요즘 들어 정치적 양극화가 더 뚜렷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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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대서양 바닷가 마을부터 서쪽의 애팔래치아산맥 시골 동네까지 길게 뻗어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에는 샬럿을 비롯, 유명 대학들이 몰린 교육도시들(더럼·채플힐 등)도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센트럴대 자비스 홀 교수는 지역방송(WRAL) 인터뷰에서 "가장 도시적인 곳, 가장 시골스러운 곳, 또 가장 교외의 특성이 강한 곳이 공존하는 지역이 노스캐롤라이나"라며 "미국 정치 민심의 바로미터가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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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를 제외하곤 최근 40년 동안 줄곧 공화당 대선 후보가 이곳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1~4%포인트 정도 표차의 박빙 승부였다. 민주당세의 도시지역, 공화당세의 시골 지역 표심이 워낙 갈리다 보니 그 사이에 있는 교외 지역(Surburb)의 표심이 중요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여러분 이웃에 저소득층용 주택이 지어져 집값 내려갈 것을 걱정하게 하지 않겠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교외 지역 주부들의 표심을 겨냥한 계산된 트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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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결과도 엎치락뒤치락
이번 선거 결과 역시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지지율은 27일 기준 리얼클리어폴리틱스 집계 상 바이든 후보(48.7%)가 트럼프 대통령(48%)을 0.7%포인트 차로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통계학적으로 거의 의미 없는 차이다.
선거인단 수 15명의 노스캐롤라이나는 텍사스(38명)·조지아(16명)·플로리다(29명) 등과 함께 남부 전통의 격전지로 꼽힌다. 2016년 대선 때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세 곳을 싹쓸이했다. 여러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이번엔 일단 이곳 중 하나라도 내주면 재선은 힘들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25일 텍사스에서 바이든 후보가 오차범위 안(3%p)에서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면서 공화당 측은 더 바짝 긴장하게 됐다.
양 캠프도 이들 지역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들어 노스캐롤라이나를 10번이나 다녀갔다. 대도시가 아닌 주로 외곽 지역이었다. 현장유세를 최소화하는 바이든 후보조차도 18일 손녀와 함께 민주당세가 강한 더럼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이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는 21일 애슈빌과 샬럿 등 서쪽 지역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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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가 바이든 지지" 흑인 투표율에 결과 달려
노스캐롤라이나는 흑인의 투표권과 관련한 어두운 역사가 있다. 1898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의 투표권을 빼앗기 위해 윌밍턴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수십 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지금은 주민 열 명 중 두 명 이상(22%)이 흑인인데, 전국 평균(12.6%)보다 많다. 따라서 선거에서 흑인 표심이 중요한 곳 중 하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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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에 따라 표심도 완전히 갈린다. 최근 WP-ABC 여론조사에 따르면 백인의 경우 바이든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39%지만(트럼프 지지 58%), 흑인의 경우 바이든 지지가 84%나 된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흑인은 14%에 불과하다.
4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건, 숨어 있던 이른바 '샤이 트럼프'들 덕분도 있겠지만, 흑인 유권자들이 굳이 클린턴을 뽑으러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은 탓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WP에 따르면 2012년 66.2%까지 계속 상승하던 흑인 투표율은 2016년 대선 때 59.6%로 뚝 떨어졌다. 따라서 흑인 유권자가 실제 얼마나 투표소로 나가느냐가 이번 대선에서도 관건이다. CNN은 4년 전과 달리 흑인 유권자들이 엄청난 기세로 사전투표에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Z세대'(1997년 이후 출생자)의 열기가 뜨겁다고 분석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만난 릴리아나 이란쿤다. ″주변에서 이번에는 꼭 투표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광조 JTBC 영상기자] |
이번에 첫 투표를 한다는 흑인 여성 릴리아나 이란쿤다(19·샬럿)는 "주변에 이번엔 꼭 투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커지면서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가 흑인들의 높은 사전투표율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흑인들의 사전투표율만큼이나 우편투표 용지에 얼마나 정확하게 기표했는지도 중요하다"면서 "서명 등을 제대로 안 하면 무더기 무효표가 나올 수 있는데 이 역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스토니아·샬럿=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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