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위 “법원들, 디지털성폭력 사건 일관된 기준 세우기를”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재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성착취 근절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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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박사방’에서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 일당의 1심 판결 직후 피해자지원 단체들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디지털성폭력 근절, 남은 수사와 재판, 피해자 회복 등 과제를 언급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 ‘잡히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조주빈의 말은 오늘로써 틀린 것이 되었다”며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된 첫 사례로, 사회와 여성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여전히 온라인 공간은 안전하지 않고 피해자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장벽들을 마주한다”며 “재판 과정에서 미흡했던 문제를 돌파하고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사법부에 조주빈을 비롯한 주요 가해자만 ‘반짝 관심’ 속에 처벌한 뒤 관성대로 ‘n번방이 먹고 자란 판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모든 디지털성폭력 사건이 이번 사건과 같은 관심을 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은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홀로 법원을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모든 법원이 디지털성폭력 사건을 대했던 모습을 돌아보고 최소한의 일관된 기준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주범들의 1심 재판이 끝났을 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수사와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대책위는 수사기관에 성인지감수성을 갖춘 수사방식을 요구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해자들은 공범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중간 가담자, 유포하고 다운로드 받은 가해자들을 계속 맞닥뜨린다”며 “피해자들은 그때마다 고소장 제출부터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해볼 만한 것이 되려면 수사기관이 (피해자에게 반복해서 피해사실을 증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의 증거 목록에서 피해 내용을 확인하는 등 기존의 방식과 다른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포·소지에 관한 엄정한 처벌과 피해자 중심의 양형기준 마련도 남은 과제로 꼽혔다. 권효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특히 유포와 소지에는 아직도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범죄는 유포하지 않아서, 유포 범죄는 영리 목적이 없어서, 영상제작 범죄는 얼굴을 또렷하게 만든 것이 아니어서 감경해주고 있다”며 “피해자 관점으로 양형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이 자리에서 대독된 발언에서 “제 잘못이라 인정하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비난당할 것 같고, 잘못이 아니라고 호소하면 잘못한 게 맞다고 비난당할 것 같았다”며 “숨고 싶었지만 두렵다고 피하면 그들이 웃을 것을 안다. 앞으로 살아갈 나를 그들이 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조 변호사는 “이 모든 변화는 폭력을 버텨내고 생존하여 범죄를 고발한 피해자들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오늘의 결과 앞에 어떤 수사기관도, 어떤 법원도 영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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