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2 (금)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잡히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조주빈의 말은 틀렸다[플랫]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 일당의 1심 판결 직후 피해자지원 단체들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디지털 성폭력 근절, 남은 수사와 재판, 피해자 회복 등 과제를 언급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잡히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조주빈의 말은 오늘로써 틀린 것이 되었다”며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된 첫 사례로, 사회와 여성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여성들을 협박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해 법정에 선 조주빈은 1심에서 징역 40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현우)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과 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에 대해 징역 40년과 범죄수익 1억604만원을 추징한다고 선고했다. 아울러 30년간 전자발찌 부착, 10년간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제한, 15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등을 명령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래픽|이아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조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수의 피해자를 유인·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오랜 기간 여러 사람에게 유포했다”며 “특히 많은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해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줬다”고 말했다.

    공범들에게도 중형이 선고됐다. 박사방을 함께 운영해온 공무원 천모씨(29)에게 징역 15년, ‘태평양’ 이모군(16)에게는 소년범 최고형인 장기 10년·단기 5년의 징역형, 조씨에게 신원조회 결과를 알려준 전직 사회복무요원 강모씨(24)에게는 징역 13년을 각각 선고했다. 조씨에게 돈을 내고 성착취 동영상을 소지한 임모씨에게는 징역 8년, 장모씨에게는 징역 7년이 선고됐다.

    대책위는 “여전히 온라인 공간은 안전하지 않고 피해자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장벽들을 마주한다”며 “재판 과정에서 미흡했던 문제를 돌파하고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조은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이 모든 변화는 폭력을 버텨내고 생존하여 범죄를 고발한 피해자들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오늘의 결과 앞에 어떤 수사기관도, 어떤 법원도 영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책위는 사법부에 조주빈을 비롯한 주요 가해자만 ‘반짝 관심’ 속에 처벌한 뒤 관성대로 ‘n번방이 먹고 자란 판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모든 디지털 성폭력 사건이 이번 사건과 같은 관심을 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은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홀로 법원을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모든 법원이 디지털 성폭력 사건을 대했던 모습을 돌아보고 최소한의 일관된 기준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주범들의 1심 재판이 끝났을 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수사와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대책위는 수사기관에 성인지감수성을 갖춘 수사방식을 요구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해자들은 공범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중간 가담자, 유포하고 다운로드 받은 가해자들을 계속 맞닥뜨린다”며 “피해자들은 그때마다 고소장 제출부터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해볼 만한 것이 되려면 수사기관이 (피해자에게 반복해서 피해사실을 증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의 증거 목록에서 피해 내용을 확인하는 등 기존의 방식과 다른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포·소지에 관한 엄정한 처벌과 피해자 중심의 양형기준 마련도 남은 과제로 꼽혔다.

    권효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특히 유포와 소지에는 아직도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범죄는 유포하지 않아서, 유포 범죄는 영리 목적이 없어서, 영상제작 범죄는 얼굴을 또렷하게 만든 것이 아니어서 감경해주고 있다”며 “피해자 관점으로 양형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이 자리에서 대독된 발언에서 “제 잘못이라 인정하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비난당할 것 같고, 잘못이 아니라고 호소하면 잘못한 게 맞다고 비난당할 것 같았다”며 “숨고 싶었지만 두렵다고 피하면 그들이 웃을 것을 안다. 앞으로 살아갈 나를 그들이 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오경민 기자 5km@khan.kr
    박은하 기자 eunha999@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 인터랙티브:자낳세에 묻다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