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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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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인사이트] 민병 앞세운 회색지대 전술로 남중국해·대만해협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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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국가주석 취임 한 달 만에

민병대 찾아 “훈련·정보수집” 지시

미 의회 “민병대 지원 기업 규제를”

이어도 출몰해 협상 압박 우려도



중국식 해양강국의 첨병 해상 민병대



중앙일보

지난 2013년 4월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하이난성 탄먼진의 해상 민병 부대를 찾아 부대원을 격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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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식 장비 지식을 배우고, 작업 능력을 키우며, 어민을 인솔해 바다에서 돈을 벌면서 동시에 먼바다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섬과 암초 건설 작업을 돕도록 격려했다.”

2013년 4월 10일 중국중앙방송(CC-TV) 메인뉴스가 중국 해상 민병대의 임무를 보도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국가주석 취임 한 달 만에 하이난(海南)성의 탄먼(潭門) 해상 민병부대를 격려한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다. 세계 어느 나라 정상도 어선의 군사 작전 투입을 격려한 경우는 없었다.

올해 2월 20일 워싱턴에서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가 중국 군사력 팽창 실태를 살피는 청문회를 열었다. 그레고리 폴링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아시아해양투명성기구(AMTI) 소장이 남중국해에서 펼쳐지고 있는 중국의 해군·해안 경비대·해상 민병대의 삼각 공조 현황을 증언했다.

“2017년 말 중국은 남중국해의 공군기지 세 곳을 모두 운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상당한 규모로 증강된 인민해방군 해군, 해안 경비대, 해상 민병대가 스프래틀리(중국명 난사·南沙) 군도에서 목격됐다. 대함 순항 미사일과 지대함 미사일도 배치됐다. 스프래틀리에 전개된 해상 민병대 함정이 하루 300여척으로 늘었다. 1년 전의 세 배다. 중국은 아세안 국가의 새로운 원유와 가스 시추를 모두 막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동을 감시할 능력을 갖췄다.”

청문회 의장인 래리 워츨 미 외교정책위원회(AFPC) 선임연구원이 “해상 민병대의 불법 행위를 막을 유엔 제재가 필요하지 않나”고 물었다. 폴링 소장은 “해상 민병대의 행동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상설법은 충분하다. 미국이 보기에도, 세계 대부분 정부의 눈에도 불법”이라며 “남중국해에서 불법적인 건설을 지원하는 해상 민병대를 지원하는 중국 기업이 미국 인프라 사업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해상 민병대는 중국 ‘제3의 해양 군대’

중앙일보

최근 무기 사용 문턱을 낮춘 해 경법 초안이 발표된 중국 해경 고속정이 어선을 순찰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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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전문가들은 중국 해상 민병대의 유래를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승(不戰勝)을 주장한 손자병법에서 찾는다. 적보다 열세인 상황에서 비대칭적 게릴라전에 집착했던 마오쩌둥(毛澤東)의 전쟁론이 덧붙었다. 여기에 중국 동부 연안에 접근하는 미국 해군을 제2 도련(島鏈·사이판~괌~인도네시아) 밖으로 밀어내려는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구현하는 중국 특색의 비대칭적 군사 수단으로 해상 민병대에 주목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은 건국 초 국민당군의 공격을 막으면서 연안 조업과 해군력 열세를 보강하는 수단으로 해상 민병을 창안했다. 인민공사식 대규모 집단화 운동을 해안 어민에게 적용한 것도 해상 민병대의 뿌리가 됐다. 구소련의 해군 독트린도 영향을 끼쳤다. 중무장한 소형 선박 선단으로 대형 함대에 맞서는 ‘청년 학파(Young School)’로 불리는 해군 전략이다. 샤오진광(蕭勁光) 중국 초대 해군 사령관은 1920년대 소련에 유학하며 ‘청년 학파’ 소비에트 해군 교리를 받아들였다.

이론적으로 해상 민병대는 평시에는 어업에 종사하다가 전시에 기뢰 제거 등에 투입하는 개념이다. 지금은 정규군에서 훈련을 받고 군인과 같이 봉급과 연금 등 혜택을 받는 준(準)해군으로 활동한다. 중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신시대 국방백서』는 “전국의 민병 규모를 정예화 간소화한다”고 명시했을 뿐 민병의 군종별 현황과 수치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앤드루 에릭슨 미 해군대학 교수는 중국 해상 민병대를 “제3의 해양 군대(China’s Third Sea Force)”로 규정한다. 1974년 1월 파라셀(중국명 시사·西沙, 베트남명 호앙사) 해전에서 중국 민병대 어선이 점령 작전의 첨병에 섰으며, 2009년 미 해군 임펙커블함의 해양 조사 활동을 저지하는 데에도 민병대의 적대 행위가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다. 당시 민병대 어선은 뱃머리 충돌(ram)을 감행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제정한 국제해상충돌예방법규(COLREG)는 뱃머리 대 뱃머리 충돌 행위를 항행의 자유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로 본다. 최근 10월에는 동중국해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에 중국 해상 민병대 100여척이 100여일 이상 상주하며 일본을 압박했다.

‘리틀 블루맨’ 앞세워 회색지대 전술 펼쳐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 병합했다. 당시 군번과 계급장 없는 녹색 군복 차림의 ‘리틀 그린맨’으로 불린 민병대가 활약했다. 에릭슨 교수는 중국 어선의 파란색 선체와 푸른 해군 군복에 착안해 중국 해상 민병대원을 ‘리틀 블루맨(小藍人·소람인)’이라고 명명했다. 미 랜드연구소의 데릭 그로스먼 선임연구원은 “해상 민병대가 중국 해군·해경과 병행 작전을 지원하는 역할이 증가할 것”이라며 “저비용과 낮은 기술로 운용할 수 있는 민병대를 주권 분쟁과 해안 방어에 의존하고 있어 향후 약 두 배까지 증강할 수 있다”고 중국과 정반대의 전망을 내놓았다.

민병대가 앞장서는 회색지대(Grey zone) 전술은 미군의 개입을 막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중국이 선호하는 추세다. 이달 1일 발표된 USCC의 ‘2020년 연례 보고서’는 대만 해협에서 올해 펼쳐진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을 소개했다. “평화와 전쟁 사이의 작전 공간, 기존 현상을 바꾸려는 도발적인 행동으로 임계점 아래에서 재래식 군사 대응을 촉발하는 행동”으로 정의하고, 지난 3월 19일 해상 민병대로 보이는 쾌속정 10여 척이 대만 해경 소속 해상 초계정 두 척에 접근해 돌과 병을 던진 공격이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한·중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에도 개입

해상 민병대는 한국 서해에도 출몰한다. 한·중 해양 경계 획정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노림수가 읽힌다. 2001년 ‘한·중 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중첩된 200마일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의 잠정수역에서는 두 나라 해경과 어업단의 공동 통제 아래 조업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획정 실무회담에서 어업 활동 사례를 들어 역사적 어업권을 주장한다. 형평성에 따른 등거리 원칙이 아닌 중국의 해양 이익을 고려해 한국 측으로 더 들어간 경계선을 주장한다. 최근에는 독도 인근 대화퇴 근해에서 중국 어선의 오징어 불법 조업도 잦아지는 추세다. 한국 해경은 이를 중국 해상 민병대가 주도하는 불법 어업 행위로 파악하고 있다.

이어도 인근 해역도 해상 민병대의 잦은 출몰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한·중은 이어도를 해양 영토 문제가 아닌 해양 경계 획정 문제로 합의했으나, 중국은 지속해서 어선단을 보내고 있다. 역사적 어업권을 주장하는 중국이 민병대를 앞세워 회색지대 전술을 펼칠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 중국 해경 근거법 초안…외국 선박에 발포 문턱 낮춰

지난 11월 4일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해경의 무기 사용 문턱을 대폭 낮춘 ‘해경법’ 초안을 발표했다. 중국 해역에서 활동 중인 외국 선박이 정지 명령에 불응할 경우 무기 사용을 용인했다. 일본 언론은 센카쿠 해역에서 조업 중인 일본 어선이 수정법안의 목표라고 분석한 보도를 쏟아냈다.

초안의 19조는 “국가 주권, 주권 권리와 관할권을 갖는 해상에서 외국의 조직, 개인의 불법 침해 혹은 긴박한 위기를 받을 때, 해경 기구는 본 법에 따라 무기 사용을 포함한 모든 필요한 조처를 취해 침해를 저지하고 위험에서 벗어날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했다. 43조는 “외국 선박이 중국 해역에 진입해 불법 생산 활동에 종사할 경우 해경이 소총을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특히 44조는 ▶해상 대테러 임무 ▶엄중한 폭력 사건 ▶위험한 방식의 공격을 당했을 경우에는 개인 화기가 아닌 함재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45조는 손쓸 틈이 없거나 더 큰 피해가 예상될 경우에는 무기의 ‘직접’ 사용까지 허가했다. 인체를 겨냥한 조준 사격까지 용인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해경법 초안이 발표되자 일본은 관방장관이 나서 “중국 해경의 움직임을 고도로 관찰하겠다”며 우려했다. 중국 해경법 초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해사, 대만 국방대 석사, 영국 브리스톨대 박사. 예비역 해군대령이다.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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