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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日울린 일본판 '정인이 사건'…계부 학대에 짓밟힌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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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11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들이 서울 남부지법 앞에서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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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의 학대에 16개월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의 사연은 온 국민을 분노와 슬픔으로 몰아넣었다. 지난해 10월 13일 정인이의 사망 직후 이미 집중 보도된 바 있던 사건의 전말은, 이달 초 모 공중파 탐사 프로그램의 전파를 탄 뒤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인면수심의 양부모는 물론,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있던 세 차례의 기회를 날리는 데 일조한 경찰과 소아과, 홀트 아동복지회 등 관계자들에 대한 비난과 처벌 청원이 잇따랐다. 정치인과 연예인 등 유명인들을 중심으로 "정인아 미안해"라는 해시태그를 공유하는 챌린지도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13일 국민의 공분 속에 진행된 1차 공판에서 양모 측은 "때린 건 맞지만 고의는 없었다"며 "살인은 물론 학대치사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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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후나토 유아의 모습. 사망 당시 몸 170여군데에 멍과 상처가 발견됐다/사진=일본 KSB 유튜브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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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다섯 살 여자아이 후나토 유아의 죽음에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 유아는 계부로부터 얼굴을 주먹으로 맞고 배를 차이는 등 상습 폭행과 가학적 굶김에 시달리다 영양실조로 인한 패혈증으로 숨을 거뒀다. 사망 당시 유아의 몸무게는 또래 아이들의 절반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유아의 죽음 뒤 부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제발 부탁입니다.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는, 다섯 살배기가 쓴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절박한 반성문에 많은 일본인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사망 전까지 최소 다섯 차례의 학대 정황과 신고가 있었지만 일본 당국은 부모에 대한 지도와 일시보호 해제 조치만 반복하다 결국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계부는 징역 13년에 처해졌다.


한·일 양국, 유사한 아동학대 급증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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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로 사망하는 아이들 숫자는 한일 양국 모두 매년 수십 명에 달한다. 정인이와 유아 사건은 이 중 특히 세간의 관심을 받은 사건이다. 안타깝고 충격적인 학대 정황과 함께 아이들의 얼굴이 매스컴을 타며 큰 파급력을 낳았다. 이는 한편으로 정인이, 유아 외에도 많은 어린 생명이 매해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어가고 있으며 세간의 별다른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묻히는 건도 부지기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최근 몇 년 새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건수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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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와 유아를 학대한 건 공교롭게 양부모와 계부였지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일본 모두 전체 아동학대 가해자의 70~80%는 친부모로, 양부모나 계부모가 가해자인 경우는 10%가 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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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신고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는 양국이 놀라울 만치 닮았다. 일본에서 아동 보호 및 학대를 일차적으로 다루는 기관인 '아동 상담소'에 들어오는 아동학대 신고·대응 건수는 2002년 이후 작년까지 18년 연속 늘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여파로 8월까지 해당 건수가 13만건을 훌쩍 넘어서는 등 역대 최대 급증세를 보였으며, 일본 경시청이 적발한 학대 건수도 역대 최대였다. 이 같은 경향은 일본 이외에 다른 나라들에서도 발견되는데, 비영리재단 '세이브 더 칠드런'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37개국 아동학대 신고비율은 코로나 이후 평균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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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정인이 양부가 첫 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그는 폭행에 공모한 사실이 없으며 학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사진=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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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내놓는 '학대피해아동보호현황'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 신고 건수는 아동학대 예방사업이 시작된 2001년부터 2019년까지 단 한 차례 감소 없이 증가해왔다. 한국은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줄어든 점이 눈에 띈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약 8% 감소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당 기간 아동학대 건수가 실제 줄어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변수에 유치원· 학교 등의 등원· 등교가 제한되면서 학대 사례가 드러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상은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들의 사정이 1년 새 훨씬 더 악화됐을 거란 얘기다. 한국의 아동학대 발견율(아동 인구 1000명당 아동학대 건수)은 2019년 기준 약 3.8%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수치라곤 하나, 여전히 호주(약10%)나 미국(약9%)은 물론, 일본(약6%)보다도 낮다. 이는 곧 발견되지 못하고 지나가는 아동학대가 유독 많다는 걸 암시 한다.


日'시쓰케'빙자한 학대에 체벌 금지…한국도 민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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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는 빈번히 훈육을 빙자해 발생한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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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양모는 1차 공판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나 때렸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공판 이틀 전 황급히 법원에 제출한 반성문에는 "훈육이라는 핑계로 짜증을 냈고, 다시 돌아가면 손찌검하지 않겠다"고 쓰기도 했다. 이처럼 훈육을 빙자한 아동학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해왔지만,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가 있는 일본의 경우 훈육법을 뜻하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다. '시쓰케(躾)' 라고 불리는 이것은 집단의 규범, 예절 등 관습에 맞게 행동하도록 훈련하는 것으로, 한국의 '가정 교육'이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좀 더 포괄적이고 중요하게 인식된다. 문제는 실제로 많은 학대 사례들이 시쓰케를 명분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나토 유아의 계부 역시 무자비한 폭력으로 아이를 사망케 한 뒤 시쓰케를 위해서였다는 변명을 일삼았다.

시쓰케를 빌미로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자 일본은 지난해 4월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전까지 일본 민법은 감호·교육 범위에서 친권자의 징계권을 보장한 바 있다. 대한민국 국회도 지난 8일 황급히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이로써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62년간 존속돼왔던 사실상의 체벌 허용 규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해당 규정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식과 '훈육을 위해 체벌은 불가피하다'는 반론이 공존하는 등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한국은 세계에서 61번째로 자녀 체벌 금지가 법제화된 나라가 됐다.


뒤늦게 쏟아지는 대책…예산은 日이 한국 3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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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정인이법`이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여야는 정인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지 사흘만에 관련법 11개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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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 후폭풍에 민법 개정안과 함께 같은 날 일명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에는 학대 신고 즉시 수사 및 조사 착수를 의무화했고 경찰이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권한 확대와 전문성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인이의 입양부터 사망 때까지 아이를 보호해야 할 장치가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움직임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매번 비극이 일어난 뒤 여론이 심상치 않자 반짝 분주해지는 정치권 특유의 뒷북 대책이라는 지적을 피할 순 없다. 또한 법안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선 예산과 인력 확충에 대한 추가 입법도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한국이 올해 아동학대 방지와 보호에 책정한 예산은 약 530억원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의 0.06% 정도다. 그나마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자 부랴부랴 전년 대비 40%가량 증액한 액수다. 게다가 이마저도 대부분 벌금과 복권기금 수입에서 충당되다보니 안정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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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의 경우 예산 규모는 한국을 크게 압도한다. 일본은 올해 아동 보호와 학대 방지를 위한 예산으로 한국의 34배인 총 1735억엔(약 1조8300억원)을 할당했다. 후생노동성 전체 예산의 0.5% 수준이다.한국보다 3년여 늦게 '아동권리에 관한 UN협약'을 비준했던 일본은1947년 아동복지법에 포함됐던 아동학대방지법을 2000년도에 다시 독립 제정한 뒤 거의 매년 개정해왔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에도 아동학대 사건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사망 사건도 여전히 매년 수십 건에 달한다. 특히 사망 사건 중 80% 이상이 학대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관련기관이 인식 또는 관여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발생하고 있어 일본 당국이 마련한 법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인력 부족은 양국 모두 겪는 문제다. 한국의 경우 2014년 기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당 관리하는 아동 사례가 유럽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70건에 달했다. 일본은 2018년 유아 사건을 계기로 아동상담소 전문인력을 대폭 늘려 아동상담소의 복지사 1인이 관리하는 사례는 40건 정도다. 그러나 보충되는 인력이 학대 신고·상담 건수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동학대, 복합·구조적 대책 필요…자식 소유물로 보는 인식도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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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관련연구들에 따르면 자녀살해 후 부모자살은 동양권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현상으로,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빈번하다/사진=연합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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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는 정치 사회는 물론 복지 영역과 연결되는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국가의 다각적이고 촘촘한 대책은 필수다. 한국의 경우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에 의한 신고비율이 유독 낮은 만큼 이에 대한 보완책 역시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단순히 예산과 인력 보충이 곧 아동학대 근절로 직결될지는 의문이다.

동양권에서는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의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동학대의 기저에는 아이를 자신과 동등한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는 인식이 자리하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이 아동학대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인식이 극단으로 치달아 발생하는 것이 소위 동반 자살이다. 부모와 자녀의 동반 자살은 한국, 일본 등에서만 나타나는 특이 현상으로, 부모가 멋대로 자식의 생명권을 박탈한다는 점에서 가장 처절한 아동학대 유형이다. 서구권에서는 부모가 자녀와 동반 자살하는 행위 자체가 극히 드물고 동반 자살이라는 용어 대신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살해로 규정된다.

일본은 특히 동반 자살이 만연한데, 2018년 이전 15년간 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약 40%가 부모의 동반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정확한 공식 통계는 없다. 하지만 부모의 자식에 대한 친권이 강하고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본 못지않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며칠 전 경기 수원에서 한 엄마가 열세 살, 다섯 살 두 딸을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은 아동학대를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닌 타인의 가정사, 즉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떻게 하든 그것은 부모의 권리고 내 알 바 아니라는 인식이 여전히 만연하다. 정인이나 유아 사례에서 경찰 등 관계자들은 백번 비난 받아야 마땅하지만, 이 같은 인식이 소극적 대응으로 이어져 비극을 부른 단초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정인이와 비슷한 연령대의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필자 역시 이번 사건을 접하고 천인공노할 범죄에 분노했고 오랜만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소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건 국민청원에 동의하고 관련 소식을 팔로우 하는 것 정도 뿐이었다. 부디 지금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높아진 관심이 한때가 아닌, 변화를 이끌어 낼때까지 계속돼 구조적 대응책과 함께 사회적 인식 전환을 이뤄 두 번 다시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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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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