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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일본 울린 의인 이수현씨 20주기…母 "코로나로 못 가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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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고(故) 이수현씨 어머니 신윤찬씨가 화상으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화면 캡쳐]



2001년 일본을 울린 한국인 유학생 고(故) 이수현씨. 도쿄(東京) JR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짧은 생을 마감한지 26일로 20년이 된다. 세상은 ‘숭고한 죽음’이라고 했지만, 자식을 앞세운 부모에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올해 아들의 20주기를 앞둔 이씨의 어머니 신윤찬(72)씨를 20일 화상으로 만났다.

매년 1월26일이면 사고가 났던 신오쿠보에선 이씨의 추모식이 열렸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추모식 규모도 축소됐고, 신씨도 처음으로 일본에 가지 못했다. 신씨는 “지난 20년간 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담아 동영상으로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한류의 메카’이자 ‘혐한 시위의 한복판’이었던 그곳에서 이날만큼은 모두가 한뜻으로 이씨의 죽음을 기리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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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수현씨의 일본 유학시절 모습. [신윤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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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 이어, 신씨는 아들의 이름을 딴 ‘LSH 아시아 장학회’ 명예회장이 됐다. 아들의 의로운 죽음이 알려지자 빈소에는 일본 시민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고 전국에서 위로금도 모였다. 이듬해 부부는 모금액 1000만엔(약 1억원)을 바탕으로 일본에 유학 온 아시아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을 세웠다. 한국과 일본에서 후원이 계속됐고 매년 50명씩, 지금까지 998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1000명이 돼간다.

A : “수현이처럼 일본의 비싼 물가를 감당하며 공부하는 아이들이다. 수여식 가서 보듬어 안아주면 내 자식 같은 마음이 든다. 어려워도 꿈을 잃지 말고 용기를 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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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수현씨의 이름을 딴 'LSH 아시아 장학회'의 제13회 수여식. [이수현님을 기억하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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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A :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학업을 중단할 뻔한 한국인 남학생을 나중에 한 행사에서 만났다. 장학금 받아서 원하던 대학도 가고 취업도 할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고 하더라. 한 학생은 결혼하고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도 전해줬다.”

Q : 학생들을 보면서 아들 생각에 힘들진 않았나.

A : “사고 난 뒤 얼마 동안은 밖을 잘 못 다녔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 군인까지 다 수현이처럼 보여서 땅바닥만 보고 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수현이가 높은 곳에서 이곳을 걱정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힘들어하면 하늘에서 아들이 ‘엄마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씩씩하고 쾌활하게 살려고 한다. 불쌍하거나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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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수현씨의 어릴적 어머니 신윤찬씨와 함께 찍은 사진. [신윤찬씨 제공]



일본 각지에서 위로와 응원의 편지가 오면서 신씨는 일본어도 공부했다. 한때는 우체부한테 미안할 정도로 편지가 밀려들었다. 이씨가 다녔던 아카몬카이(赤門會) 일본어학교에서 일부 번역해주기도 했지만, 정성이 담긴 편지를 직접 읽고 답장도 쓰고 싶어서 학원에 다녔다. 유학길에 오르면서 “한·일 우호 증진에 앞장서고 싶다”던 아들의 포부를 이렇게라도 이루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수현씨의 할아버지는 일제 시절 한 탄광에 강제로 징용됐다. 탄광에서 나와 만년필 공장에서 일하며 딸·아들을 낳고 가정을 꾸린 뒤에야 고국에 돌아왔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이씨는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일본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며 유학을 떠났다. 신씨는 “한국과 일본은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아들도 공부하면서 양국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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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신윤찬 씨가 두 손 모아 아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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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은 축소됐지만, 이씨를 추모하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부산한일문화교류협회는 이씨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이수현, 1월의 햇살』을 곧 출간한다. 이씨가 유학을 떠나기 전 밴드 활동을 함께한 장현정씨가 집필한다. 주일한국대사관도 오는 26일을 맞아 유투브용 콘텐트를 공개할 계획이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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