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총장은 지난해 정권의 노골적인 찍어내기 압박에도 직접 나서진 않았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거듭되는 수사지휘권 박탈 때나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 정지 및 징계 청구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검 국감에서 다른 현안을 놓고 여당 의원들을 상대로 설전을 벌인 게 유일했다.
그런데 윤 총장은 이번 수사청 문제는 총장직을 걸어야 하는 사안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윤 총장은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수사청’이라고 포장만 해놨을 뿐 ‘검찰청법 폐지안’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윤 총장은 형사소송법 측면에서 수사와 기소 분리는 애초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죄지은 사람을 재판에 세워 형을 집행하는 것이 형법의 목표라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수사인데 이를 나눠 한다는 것은 사법 체계의 비효율적 퇴행이라는 것이다. 한 검찰 간부는 “대기업 사건을 예로 들면 검사들이 1년 넘게 매달려 수사 기록만 수십만 쪽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며 “복잡하고 중대한 사건을 기록만 읽고 재판하겠다는 것은 대형 로펌과 전관을 선임할 수 있는 돈 많은 피고인들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일선 검사들도 수사와 기소 권한을 아예 나눠 수사청과 공소청을 따로 두겠다는 여당 주장에 대해 “검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선 지청의 한 검사는 “수사청 체제에서 검사는 아예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 검·경 수사권 조정 때보다 문제의 심각성을 더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 안팎에선 “작년 말 전국적 검란(檢亂)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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