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조국 수사로 틀어진 文·尹… 589일 동행 마침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만남에서 결별까지

박근혜 탄핵 결정적 근거 끌어내

文, 후보에 없던 尹 檢 총장 낙점

조국 수사로 관계 틀어지기 시작

역대 검찰총장 잔혹사

임기제 도입 후 8명만 임기 채워

개인비리 연루·검란에 밀리기도

세계일보

지난 2019년 7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결국 결별했다. 2년 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촉발된 청와대와 윤 총장 간 갈등의 종막은 파국이었다. 2019년 7월25일 윤 총장이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지 589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9일 만이던 2017년 5월19일 대전고검 검사 신분이던 윤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기용했다. 고검장급이던 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낮추면서 실시한 ‘승진’이었다.

윤 총장은 ‘촛불정국’ 속에서 박영수 특검팀 수사팀장을 맡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구속을 이끌어냈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고, 윤 총장은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정권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이 윤 총장의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이루어지기도 했다.

2년 뒤인 2019년 5월, 문무일 검찰총장 후임 논의 때 첫 번째 후보군 명단에 윤 총장은 들어있지 않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당시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콕 집어 ‘윤 중앙지검장은 명단에 왜 없습니까’라고 했었다”고 말했다. 여권에서 “특수부 출신인 윤 총장은 현 정부의 검찰개혁 기조와 맞지 않는다.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낙점했다.

임명식장에서 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게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화기애애했던 관계는 한 달 뒤 균열로 돌변했다. 8월 검찰이 조 전 장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면서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이 있다”는 표현으로 윤 총장의 ‘저인망식’ 수사를 에둘러 비판했다.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 동안 문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사실상 추 전 장관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12월, 윤 총장 징계안이 법원 판결로 정지되자 문 대통령은 화해의 손길을 건넸다.

현 정부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인 신현수 수석을 임명했다. 하지만 두 달도 지나지 않은 2월,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둘러싸고 신 수석과 박범계 장관이 충돌하면서 화해 모드는 종료됐다. 윤 총장은 이날 정권의 검찰개혁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면서 사의했고, 문 대통령은 1시간 15분 뒤에 이를 받아들였다. 한 여당 관계자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쳤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역린 건드린 죄’ 예외없이… 14번째 사퇴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를 넉 달가량 남겨놓고 4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후 임기를 지키지 못한 14번째 총장이 됐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적폐수사’를 진두지휘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었지만 ‘역린을 건드린 검찰총장은 단명한다’는 검찰총장 잔혹사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문 대통령 등 여권의 지지와 박수를 받으며 취임할 당시 “형사 법 집행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윤 총장은 결국 여권이 자기편 이익을 위해 형사사법 시스템마저 흔든다는 생각으로 직을 던졌다. 적폐수사 당시 윤 총장에게 환호했던 여권은 검찰의 칼이 자신들에게도 향하자 윤 총장 축출에 온갖 무리수를 뒀고, 결국 윤 총장도 대다수 선배처럼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1998년 13대 국회에서 만든 검찰총장 임기제 이후 임명된 22명 중 임기를 지킨 검찰총장은 8명에 불과하다. 윤 총장처럼 자신을 임명한 정권과의 갈등으로 중도 사퇴한 사례는 노무현정부의 김종빈 전 검찰총장과 박근혜정부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총장은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이를 수용한 뒤 항의 차원에서 사표를 던졌다. 채 전 총장은 2013년 박근혜정권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의혹 사건 수사를 밀어붙이다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면서 물러났다. 반면, 노무현정부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2002년 대선 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안희정·이광재 등 정권 실세들을 처벌하는 등 정권에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2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개인 비위로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경우도 적지 않다. 김영삼정부의 박종철 전 검찰총장은 공직자 재산 공개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했다. 이 밖에 이명박정부의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당시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을 겨냥한 감찰과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추진하다 검찰 내부의 반발에 부딪혀 스스로 물러났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에는 좌우, 진보·보수가 없다”며 “검찰총장 임기제는 단순히 임기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줄 장치로 도입됐지만 결국 중립성을 보장하지 않은 것은 수사에 불편했던 권력임을 역사가 방증한다”고 꼬집었다.

이도형·이창훈 기자 scope@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