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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게임정책과 업계 현황

“고수익 앞에 게임 철학 뒷전”…확률형 아이템 덫에 갇힌 ‘돈슨(돈+넥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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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성 유도 비판에 넥슨, 3년 전 ‘탈돈슨’ 선언
여전히 전체 매출 80% 확률형 아이템으로 추산
"IP와 다양한 수익 구조 개발해야 산업 성장"

조선비즈

넥슨코리아 사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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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 논란에 따라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나선 넥슨은 3년 전인 2018년 이미 ‘탈(脫)돈슨’을 선언했다. ‘돈슨(돈+넥슨)’은 게임에 돈을 쓰게 만드는 넥슨의 수익 전략을 비꼬는 말이다. 당시 넥슨을 향해 현금결제를 지나치게 유도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넥슨은 회사 차원에서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앞서 2014년에도 넥슨은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G-Star)에 참가해 슬로건으로 ‘돈슨의 역습’을 내걸었다. 당시 사업본부장이었던 이정헌 넥슨 대표이사는 "더는 돈슨이라 불리지 않기 위한 의지"라고 슬로건을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에도 넥슨의 주요 수익원은 여전히 확률형 아이템이다.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이 가장 쉽고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이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업계 관계자는 "한 번 (확률형 아이템으로) 돈맛을 들이면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며 "국내 게임회사 매출의 대부분이 확률형 아이템에서 나오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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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NXC 대표. /넥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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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만 벌면 끝?…확률형 아이템 늪에 빠진 게임 업계

8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 게임사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지난해 4분기 기준 매출의 89%가 리니지, 리니지2, 리니지M, 리니지2M, 블레이드앤소울, 아이온, 길드워2 등에서 나왔다.

같은 기간 넷마블은 세븐나이츠2, 일곱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 리니지2 레볼루션 등이 매출의 64%를 차지했다. 넥슨도 매출의 70%가량이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마비노기, 바람의나라 등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게임들의 월정액 요금과 확정형 유료 아이템 비중은 5%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95%는 확률형 아이템을 팔아 번 돈이라는 의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확률형 아이템의 전체 매출 비중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80%가 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주로 역할수행게임(RPG)에서 활용된다. 게임 속 캐릭터와 자신을 일치하는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많은 이용자가 자신의 캐릭터를 누구보다 강력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데, 심리 전문가들은 이를 현실 세계에서 고가의 자동차나 시계, 가방 등이 ‘과시형 소비재’로 작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들여 A 장비를 구했다고 한다면, 경쟁자들은 곧 2000만원을 들여 A 장비보다 뛰어난 B 장비를 습득한다. 이런 경쟁이 반복되면서 게임 내 권력 구도가 형성되고, 이 구도를 중심으로 이용자들이 각기 모여 하나의 세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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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2M의 한 장면. /엔씨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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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에서는 세력 간 전쟁이 주요 콘텐츠로 종종 다뤄지기도 한다. 이때 아이템(장비) 수준이 다른 세력에 비해 약하면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고, 이용자들은 또다시 경쟁적으로 돈을 들여 아이템(장비) 확보에 나선다. 순환 결제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결제가 이뤄지기 위해 게임회사는 확률이라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용자들은 이 확률에 의해 원하는 아이템이 손에 들어올 때까지 계속 결제를 하게 된다.

국내 게임 매출 순위에서 늘 상위를 차지하는 게임들이 대부분 RPG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 경영진·개발자 이해관계 일치…"수익 지상주의 개선해야"

확률형 아이템의 높은 매출 비중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는 업계 내에서도 충분히 나왔었다. 이번에 확률 조작 의혹이 불거졌던 넥슨의 이정헌 대표 역시 지난 2018년 경영진 간담회에서 "언제까지나 확률형 아이템으로 회사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수익 구조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넥슨을 포함한 대부분의 업체는 아직도 그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데, 업계는 이에 대해 경영진과 개발진의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고수익’ 앞에서 게임에 대한 철학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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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메이플스토리’의 모바일 버전인 ‘메이플스토리M’. /넥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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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전직 게임 개발자 이모씨(남·39)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개발자들이 게임 전반에 등장하는 보상과 기한을 고려해 적절한 확률의 아이템을 만들어도, 수익성이 낮으면 경영진의 선택을 받기 힘들다"며 "개발자들이 매출에 신경쓰지 않고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개발자 내부 비판도 나올 수 없는 게 게임의 성공은 곧 개발자들의 수익이기 때문이다"라며 "확률형 아이템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경영진과 그 수익을 나눠 갖는 개발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일종의 결과물이다"라고 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대안으로는 ‘배틀 패스’ 등이 거론된다. 배틀 패스는 일정한 금액을 결제한 이용자들이 일정 기간 내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거나 주어진 미션을 성공하면 희귀 아이템 또는 강화 아이템을 차별 없이 주는 제도다. 게임사들의 수익을 보존하면서도 확률형 아이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신규 지식재산권(IP) 개발과 다양한 수익 구조를 개발해야 국내 게임산업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며 "돈이 되는 게임보다 적은 돈을 쓰더라도 많은 이용자가 즐길 수 있는 게임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윤진우 기자(jiinw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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