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직원들의 광명·시흥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정부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중심의 합동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론은 썩 우호적이지 않다. 임기 내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그러나 오히려 부동산 폭등만 초래한 현 정권 입장에서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이미 화재가 발생한 장소에 인화물질이 뿌려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
많은 국민은 민변과 참여연대가 폭로한 명단 외에도 훨씬 많은 공직자가 관련돼 있을 것으로 의심한다. 국민청원게시판에 ‘LH 주도의 3기 신도시 지정을 철회해 달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야 하나’라는 내용으로 올린 글은 5일 만에 4만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부동산은 입시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역린에 속한다. 따라서 관련자들의 발본색원과 처벌, 제도개혁은 당연한 수순이다. 조사 대상자만 수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과거와는 색다른 논쟁이 등장했다. 바로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 있느냐다.
수사권 조정으로 상징되는 검찰개혁안이 올 1월부터 시작됐다. 문제는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인 6대(부패, 경제, 공직자 등) 범죄에 포함되느냐다. 정부는 일단 검찰을 배제시켰다.
사실 불필요한 논쟁이다. 검찰에 남아 있는 6대 범죄 직접 수사권한도 박탈하려는 정부 입장에서는 검찰이 나서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온 국민이 분노하고, 조사 대상만 수만명인 데다 공무원 뇌물 등 부패, 경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므로 수사 초기에 검찰도 포함시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부동산 투기와 관련해 직접 수사권이 없는 국세청이나 금융위가 참여한 것과 비교해도 검찰이 배제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법무부는 최근 정부 업무보고에서 ‘국민을 위한 수사권 개혁’을 지난 4년간 주요 추진 성과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국수본이 강제 수사에 나선 것은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지 1주일이나 지나서다. 그 시간만큼 입을 맞추거나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준 셈이다. 수사에 늦게 착수한 국수본이나 수사에 직접 나서지 못하는 검찰이나 모두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 정부의 조치로 인해 국민을 위한 수사권 개혁에서 ‘국민을 위한’은 빼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국민은 그냥 정부를 믿고 기다리면 될까. 아니면 언론을 통해 수사 상황을 알 권리가 있을까. 앞선 법무부의 주요 추진 성과 중 하나로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을 제정하는 등 인권 친화적인 수사 환경 조성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도 법무부는 성과로 내세웠다. 물론 이 규정은 검찰에 적용된다.
그렇다면 국수본이 수사하는 상황은 국민에게 공개하고, 장차 검찰로 송치되는 사건은 비공개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예견된다. 이게 무슨 개혁인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을 뿐만 아니라, 대권 지지율 1위로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됐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고려하면 몹시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윤 총장의 책임일까.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로 시작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로 인해 검찰과 정권과의 갈등은 사상 첫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강행에 이르기까지 됐다. 이 와중에 검찰의 모든 수사권한을 박탈하려는 여권의 움직임에 맞서 윤 총장이 사퇴 말고 달리 대응할 수단이 있었을까.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개혁에는 일관성과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개혁을 추진한다면서 윤 총장과 심각한 갈등을 초래한 추미애 전 장관은 얼마 전 (현재까지 관련자들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참 장하다. 온 가족이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총장 사퇴, 개혁의 혼란이 누구 책임인지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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