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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왕숙지구 르포] “조상께 물려 받은 땅, 신도시 투기꾼 못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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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토지보상 반대 플래카드 “철저히 전수 조사해야”

지역 대책위 지장물조사 거부…신도시 차질 우려 현실화

아시아경제

15일 오후 3기 신도시 왕숙지구로 지정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도로변 곳곳에 토지보상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다. (사진 - 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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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전수조사부터 확실하게 해야죠. 투기꾼들 전부 잡아낼 때까지는 토지 보상작업 진행 못합니다."(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주민 A씨)


15일 오후 방문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정부가 수도권 3기신도시로 지정한 남양주 왕숙지구가 들어서는 곳이다. 도로변 곳곳에는 토지보상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었다. 이달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직원의 광명시흥지구 사전 투기의혹이 제기되기 전만 해도 어느 정도 토지수용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지만 분위기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LH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로 토지보상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진건읍 진관리의 한 밭에는 주민들이 모여 앉아 LH 직원의 투기 의혹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5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다는 정모(77)씨는 "주민들에게는 헐값 주고 평생 살아온 땅에서 나가라고 하더니 자기(공무원)들은 투기로 수십억씩 돈이나 챙기고 있었다"며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그런 도둑들에게 넘길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광명시흥지구에 몰린 LH 직원들의 투기가 왕숙지구에서도 벌어졌을 것으로 단정하는 분위기였다. 한 주민은 "광명시흥지구에 수백억씩 투기를 했다는데 왕숙지구라고 투기가 없었을 리 없다"라며 "이곳 일대도 철저하게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주민은 "몇 개월 지나서 잠잠해지면 이번 사태도 은근슬쩍 넘어갈까봐 걱정이다"라며 "이참에 불법 투기매입만 일삼는 LH를 해체해야 한다"고 격앙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토지보상을 위한 지장물 조사 절차도 중단됐다. 3기 신도시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던 우려가 현실화하는 셈이다. LH가 8일부터 왕숙지구에 대한 지장물 조사를 시작했지만 해당 지역 주민대책위원회들이 잇따라 사전투기 의혹의 사실관계가 밝혀질 때까지 모든 일정을 보이콧한다고 선언하며 조사가 중단됐다.


왕숙지구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린 기관을 어떻게 믿고 조사를 맡기겠느냐"며 "제대로 된 전수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떠한 협의도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역시 3기신도시로 지정된 하남 교산지구 역시 이번 사태의 여파로 지장물 조사가 중단된 상태다. LH는 지난 2일부터 하남 교산지구에 대한 지장물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조사에 착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진관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주민 B씨는 "예전에는 주민들 대부분이 보상이라도 많이 받아가지고 나가자는 생각이었다"며 "지금은 아예 신도시가 취소됐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이 지역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LH사태 이전에도 보상가나 대토 마련 등 각종 이해관계로 LH와 주민들 간에 갈등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보이콧 움직임으로 번지는 것은 처음"이라며 "그나마 토지 수용을 찬성하던 목소리마저도 이번 사태로 쏙 들어가서 강력한 반대 여론이 형성된 상태"라고 전했다.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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