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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판타지'로 되살아난 119년 전 왕실 잔치...국립국악원 '야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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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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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을 맞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궁중 잔치 <야진연>의 한 장면. /국립국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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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폭포수가 쏟아지며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커다란 호수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연회의 시작을 알리는 풍악이 울리고, 객석에선 황제와 태자의 행렬이 등장한다. 배에 오른 황제는 무대 가장 높은 곳, 무릉도원의 세계로 나아간다.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 아래 나라의 융성과 군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춤 ‘제수창’이 끝나면 호수엔 세 개의 달이 뜬다. 무대 정면 보름달에서 쏟아지는 푸른 물이 무대 바닥, 술잔 속 달을 채운다. 물이 차오를수록 ‘밤의 축제’도 무르익는다. 국립국악원이 119년 전 왕실 잔치를 재해석한 공연 <야진연(夜進宴)>의 한 장면이다.

1902년,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함녕전에서 펼쳐진 화려한 밤의 축제가 LED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현대적인 무대 예술로 되살아났다. 국립국악원이 개원 70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야진연>은 1902년 4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기로소(耆老所·조선시대 조정 원로들의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 입소를 축하한 진연(進宴·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에서 베푸는 잔치) 중 밤에 연 잔치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국립국악원이 소장한 열 폭짜리 병풍 ‘임인진연도병’에는 당시 진연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는데, 이 가운데 여덟 번째 폭에 담긴 ‘야진연’ 모습이 무대를 재현하는 바탕이 됐다.

이번 공연은 당시 진연 중 의례를 제외하고 음악과 춤을 중심으로 재창작한 것이다. 12종목의 궁중무용은 6종목(제수창, 장생보연지무, 춘앵전, 헌선도, 학무·연화대무, 선유락)으로 축소하고 여기에 정동방곡을 시작으로 여민락, 수제천, 해령 등 궁중음악의 정수를 담았다. 이상원 국립국악원 정악단 예술감독은 “임인진연의궤에 곡에 대한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아명(雅名)으로 표기돼 있고 악보가 전해지지 않아 곡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전승돼 현재 공연되는 곡 가운데 진수만을 뽑아 구성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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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경운궁(덕수궁) 함녕전에 열린 밤의 연회 ‘야진연’의 모습을 담은 ‘임의진연연도병’./국립국악원 제공


고종은 정2품 이상, 나이 70세 이상의 문신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된 기로소에 입소한 조선의 네 번째 임금이었다. 야진연은 고종에게 아홉 잔의 술을 올린 외진연, 내진연 등 성대한 규모의 연회와 달리 외빈 없이 황태자가 황제에게 술 한 잔을 올린 비교적 조촐한 연향이었다. 공연은 즉위 40년 동안 갖은 풍파를 겪어야 했던 비운의 군주 고종이 기로소를 향해 가는 길을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뱃놀이로 표현했다. 공연을 연출한 조수현 감독은 “드라마로 풀어내고자 한 부분은 고종과 태자의 관계였다”며 “아버지에게 빨리 평안을 안겨주고 싶었던 아들의 마음이 당시 연회에 담겨 있지 않을까라는 해석에서 작품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밤하늘의 은하수, 달빛과 별빛으로 물든 왕실 잔치의 풍경은 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재현했다. 조수현 감독은 자신의 첫 국악 연출작인 이 공연에서 전문 분야인 무대 영상디자인을 살려 무릉도원이란 상징적 공간을 웅장하게 표현해냈다. 무대를 둘러싼 LED 벽면은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을 통해 밤하늘에 차오르는 달을, 굽이친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와 달을 담은 일월오봉도를 환상적으로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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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 공연 <야진연>의 장면. /국립국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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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 공연 <야진연>의 한 장면. /국립국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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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궁중무용의 맥을 이어온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춤과 정악단의 화려한 음악이 더해지며 119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궁중예술이 펼쳐진다. 유정숙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은 “천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를 바치며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헌선도를 관객과 나누면서 건강한 일상으로 되돌아가자는 염원을 담았고, 담백하면서도 절제미 넘치는 학무·연화대무 등 궁중무용의 정수만을 무대에 담았다”며 “관객들이 찬란하고 깊이 있는 우리 궁중예술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119년 전 순종은 고종의 평안을 기원하며 진연을 열었지만, 새롭게 재해석한 이번 무대는 코로나19 시대 모두의 치유와 회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조수현 감독은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일상 속에서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찾자는 축제의 의미를 작품에 담았다”고 말했다. 공연은 14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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