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평생 공직을 지내고 계엄 선포 당시에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고위 공직자들이 “비상계엄 선포의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법 집행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던 전직 법무부 장관도 그런 변명을 하고, 위법성의 인식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도 한다.
계엄이 선포되자 많은 시민들이 국회를 지켜야 계엄을 막을 수 있다 생각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여의도로 달려갔다. 어떤 분들은 맨몸으로 계엄군이나 군용 차량에 맞서기도 했다. 법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이른바 ‘나랏일’을 해본 적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들은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그 위헌·위법성을 확신했는데, 저들의 위법성의 인식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불행하게도 이 나라에서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50대 이상은 자신의 생애 중에 경험하고 기억하는 사건이다. 전두환 등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통한 내란죄 성립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있다. 비상계엄 선포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루어진 경우 범죄행위에 해당할 수 있고, 비상계엄이라는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 내란죄의 구성 요건인 폭동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핵심이다. 법리적으로 보더라도 작년 12월3일 계엄 선포의 위법성에 의문을 가지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위헌적 계엄 선포를 강행하는 상황에서 고위 공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최선을 다해 막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사직이 현실적이고 유일한 선택지다. 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 간부회의에 불려 갔다가 그 자리에서 사직서를 낸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있다. 그의 검사 시절 행적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공직자로서 올바른 선택을 했다.
널리 알려진 외국의 선례도 있다. 미국에서 1973년 10월20일에 벌어진 ‘토요일 밤의 학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가 백악관 녹음 테이프 제출을 명한다. 궁지에 몰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토요일 밤에 법무장관 엘리엇 리처드슨에게 특별검사 해임을 명하자, 위법한 명령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장관은 즉시 사임한다. 닉슨은 굴하지 않고 법무차관 윌리엄 러켈스하우스에게 같은 명령을 하는데, 차관 역시 즉시 사임한다. 결국 닉슨은 법무부 서열 3위인 로버트 보크를 통해 특별검사 해임을 관철하지만, 이로 인해 탄핵은 급물살을 타고 결국 닉슨은 사임하게 된다.
해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만큼 오해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나치의 학살 명령을 수행한 아이히만이 사실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뜻도 아니고, ‘누구나 어느 한구석에는 악을 품고 있다’는 식의 관념과도 거리가 멀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엄청난 절대악의 평범성은 악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 아이히만의 악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깨닫지 않았던 자’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계엄 관련자들이 내세우는 위법성의 인식은, 법리 논쟁과는 별개로,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위법성의 인식이 없었다는 변명은, 구속과 유죄 판결을 피하려는 필사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자신은 자기 행동의 의미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는 자백이다. 고위직, 관리직은 시키는 대로 하는 자리가 아니다. 조직의 위계질서에서 상층부로 갈수록 판단과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위로 갈수록 무게감은 커지고, 때로는 위법한 명령에 바로 사표를 던질 정도의 결단도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의 생각 없음은 개인적 문제지만, 나라를 이끄는 사람의 생각 없음은 그 자체로 유죄다. 그런 선택을 했던 것에 대해 법정에서 그리고 역사의 기록에서 합당한 대가를 치르길 바란다.
유정훈 변호사 |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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