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재 우리가 알다시피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슈뢰딩거가 하필이면 고양이를 골랐다는 점이 패착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들은 확률적으로 사라지고 또 나타난다. 슈뢰딩거의 논문보다 70년 앞서 나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체셔 캣이 대표적이다. 말장난을 좋아하는 이 수상한 고양이는 어디에든 나타나고 또 어디로든 사라진다. 체셔 캣이 위치를 확정하기 전까지 그는 여기에 완전히 있지도, 없지도 않은 중첩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고양이의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면까지 사랑하는 듯하다. 체셔 캣과 양자역학의 이치를 따르는 친구들 말이다. <두 고양이>에 수록된 어슐러 K 르 귄의 단편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고전물리학에서 벗어난 이상한 세계를 다룬다. 여기서도 고양이는 화자의 집에 갑자기 나타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는 마음대로 이동한다. 마지막에 고양이가 폴짝 들어간 상자 속에는 고양이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고양이의 가능성이 든 상자는 희망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에 비견된다.
“이런 책을 쓴 사람들은 독자들에 대해 오직 한 가지 가정만 했다. 독자들도 고양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수필집에서 앤 패디먼은 고양이 관련 책에 이렇게 감상을 남겼다. 고양이를 향한 관심은 지금도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모양이다. 곽재식의 작법서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에도 고양이가 등장한다. 소설을 쓰다가 어떻게 해도 글이 막힌다면 쓸 만한 비상 수단이 여럿 존재한다. 가장 뻔한 방법은 꿈 장면이나 극중극 성격의 내용을 삽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도 저도 쓸 수 없다면 최후의 수단은 대뜸 고양이 이야기를 넣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관심이 있다면 만족스러울 책인 <거실의 사자>는 인간과 고양이를 둘러싼 과학적, 역사적 사실을 다방면으로 소개한다. 저자 애비게일 터커에 따르면 고양이는 ‘가축화’된 다른 종과 달리 스스로 집고양이가 되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길들이는 법을 배울 무렵 어느 겁 없는 고양잇과 짐승이 주변에 살기로 마음을 정했던 것이다. 개나 닭처럼 다른 종에 비하면 고양이의 신체 구조는 야생의 친척들과 멀지 않다. 다시 말해 몸길이가 40㎝든, 4m든 여기서 뒹굴뒹굴하는 고양이는 형태만은 저기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와 다름없다. 양자역학 수준으로 불확정적이지는 않더라도 고양이는 종잡을 수 없이 움직이는 존재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정말, 하필이면 고양이라니.
심완선 SF평론가 |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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