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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공산당을 공부하자” 군복 입고 유적지 우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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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100년 앞둔 중국… ‘마오쩌둥 혁명 거점’ 징강산 가보니

조선일보

구이저우(貴州)성 쭌이 회의 박물관 앞에서 군복을 입은 관람객들이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박수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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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 중국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장시(江西)성 징강산(井岡山) 간부학원. 40~50대로 보이는 중년 남녀 50여 명이 강의실에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을 대학 환경공학과 교수, 스포츠 분야 국영기업 사장, 인민은행 간부 등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의 중앙 부처 고위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날부터 ‘징강산 정신 고양과 조사 연구 능력 제고’라는 주제로 2박 3일간 연수를 받는다고 했다. 연수는 강의와 조별 토론, 유적지 답사 등으로 이뤄진다.

징강산은 국민당·공산당 내전 때인 1927년, 국민당에 쫓기던 마오쩌둥이 첫 농촌 거점을 만든 곳이다. 중국 공산당엔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2005년 이곳에 세워진 간부학원에서는 1년 내내 전국의 당 간부, 기업인, 군인들이 집중 교육을 받는다. 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중간 간부 이상의 중국 공직자들은 5년간 550시간의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이날 강의는 천성화(陳勝華) 간부학원 교수가 94년 전 마오쩌둥이 징강산에 들어와 어떻게 주민의 지지를 얻고 세력을 키웠는지에 대해 강연을 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징강산 정신’을 어떻게 자신의 업무와 연결지을 수 있는지 조별 토론이 이어졌다. 연수에 참여한 두둥윈(杜冬雲·58) 중난민족대 교수는 “당의 역사를 배워야 오늘의 중국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전역에선 오는 7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징강산 간부학원에서처럼 “당의 역사를 배우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신호탄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쏴올렸다. 그는 지난 2월 “당 전체 차원에서 당사(黨史) 교육을 전개하는 것은 일대 사건”이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조망하기 위해 반드시 당 역사를 공부하고 성공 경험을 전승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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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국 장시성 징강산시 '바자러우' 기념관. 1920년대 마오가 머물렀던 집과 집무실이 있다. 그 옆에는 2016년 이곳을 방문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과 당시 의자와 화로가 전시돼 있다./징강산=박수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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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당사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장기화될 미·중 대결 속에서 내부 단결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공산당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목적도 있다. 시 주석이 “중국 혁명 역사는 가장 좋은 영양제”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관영 매체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마오쩌둥이 이끈 초기 공산당 투쟁사다.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義)시에서 만난 가오(高)모씨는 “당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시 주석 연설을 듣고 군대 동기들과 부부 동반으로 19명이 함께 여행을 왔다”고 했다. 쭌이는 1935년 마오쩌둥이 권력을 장악하는 계기가 된 ‘쭌이 회의’가 열린 곳이다. 그는 “마오쩌둥이 국민당 포위·추격을 피해 강을 4번 건넌 ‘쓰두츠수이(四渡赤水)’ 유적지를 돌아봤다”며 “마오 주석의 전공(戰功)을 느껴보고 싶었다”고 했다.

전례 없는 당사 교육 강조가 내년 시 주석의 세 번째 연임을 위한 기반 다지기라는 해석도 있다. 마오쩌둥의 강력한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이를 시 주석에 연결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중국 국가 주석은 지금까지 2번까지만 연임했지만 2018년 이런 연임 제한 규정이 삭제돼 시 주석의 3연임 길이 열렸다. 홍콩 성도일보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이 펴낸 2021년판 ‘당사’는 전체 531쪽 가운데 27%인 146쪽이 중국몽(中國夢), 국방 현대화 등 시진핑 집권기 관련 내용이다.

지난 10일 징강산 시절 마오쩌둥의 숙소 겸 집무실이었던 바자오러우(八角樓) 유적지를 찾았을 때 안내원은 마오의 옛 거처에 이어 2016년 시 주석이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앉았던 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시 주석 사진 아래 의자 7개와 숯불을 피웠던 그릇까지 5년 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장샤오링(張曉靈) 쭌이회의 기념관 부관장은 마오쩌둥과 시 주석을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시진핑 주석은 마오 주석만큼 영향력 있는 지도자”라고 했다.

중국 공산당 유적지들은 창당 100주년을 맞아 방문객 수가 역대 최고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징강산시 관계자는 “바자오러우를 비롯해 올 1~3월 징강산을 찾은 사람은 79만명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보다 6.5% 증가했다”고 말했다.

[징강산·쭌이=박수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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