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7 (화)

봉준호→윤여정, 美 사로 잡은 원더풀 말말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스타투데이

윤여정·봉준호. 사진I스타투데이DB·CJ EN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직선과 곡선, 변주까지 자유자재로 오고 가는 진정한 달변가들이다.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윤여정(74)을 비롯해 지난해 오스카를 재패한 봉준호(53) 감독까지,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인들의 진솔하고도 수려한 말솜씨가 해외 영화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오는 25일(현지시각)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수상이 유력시 되고 있는 ‘미나리’와 윤여정.

특히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노미네이트된 데 이어 미국조합상(SAG)과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각종 해외 시상식에서 무려 33관왕이는 대기록을 세우며 종횡무진 활약 중인 가운데 그녀의 솔직하고도 재치 넘치는 ‘말’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스타투데이

배우 윤여정. 사진I판씨네마


먼저 가장 화제를 모은 건 BAFTA 수상소감이다. 윤여정은 수상 직후 “모든 상은 의미가 있지만, 이번 상은 고상한 체하는(snobbish)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 말해 그날 시상식 소감 중 가장 큰 웃음을 자아냈다.

BBC, 할리우드 리포터, 버라이어티 등 해외 유력 매체들은 작품상이나 주연상 수상자(작) 보다도 윤여정에 더 주목하며 "이날 밤의 주인공"이라고 표현했다. 시상식 이후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높아진 오스카 수상 가능성에 대해 "나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모르까 그런거 묻지 마라"고 재치있는 답변을 내놓아 취재진을 웃음 짓게 했다.

때로는 용감하고 날카롭기도 하다. 윤여정은 최근 미국 매체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두 아들은 한국계 미국인인데,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아들이 오스카 시상식을 위해 미국에 가려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며 아시아계 혐오 범죄를 언급하기도 했다. 윤여정은 “아들이 나이가 든 내가 혹시라도 증오범죄 공격을 받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며 “이건 끔찍한 일”이라고 탄식했다.

미국배우조합상에서도 윤여정은 “해외에서 이렇게 알려지게 될지 몰랐다. 영광스럽고, 특히 동료 배우들이 수상자로 선택해줬다는 것에 감격스럽다. 제가 지금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며 후보에 함께 선정된 모든 배우들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를 표해 동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에 해외 매체 인디와이어는 수상 소감 순위를 매겨 공개했는데, 윤여정의 소탈한 소감에 유일하게 A 등급을 매겼다. 이 매체는 “순수하고 여과되지 않은 정직한 순간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며 “윤여정은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내 영어 실력이 완벽하지 않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소감은 그보다 더 명료하며, 높은 수준으로 전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스카를 타세요!”라고 애정이 가득 담긴 평을 내놓았다.

사실 윤여정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본격적인 오스카 레이스가 펼쳐지기 전인 지난 해 초 열린 제36회 선댄스영화제에서부터 시작됐다. 윤여정은 선댄스에서 '미나리' 상영 이후 진행된 무대인사에서 영화에 대해 진지한 답변을 한 한예리, 스티븐 연에 이어 마이크를 건네 받자 마자 “다들 진지하다. 그런데 난 저렇게 진지한 사람이 아니다”고 말해 미국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고는 “난 한국에서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이 영화는 사실 하기 싫었다. 신인 감독과의 작업인데다 독립영화였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고생을 하게 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영화가 잘나왔다. 나는 늙은 여배우니까 이제 힘든 건 하기 싫다. 그런데 정이삭 감독이 기회를 줘 감사하다”며 진솔하고도 유머 넘치는 말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이 외에도 윤여정이 각종 외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솔하게 자신의 지난 날을 회상하며 "열등감이 나의 원동력이었다", "두 아들을 위해 어떤 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의 연속" 등 진솔한 고백과 함께 "이제야 진정 연기를 즐기게 됐다"는 말로 감동을 안겼다.

스타투데이

봉준호 감독. 사진ICJ EN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오스카 4개 부문 석권으로 영화계 새 역사를 쓴 봉준호 감독 역시 오스카 레이스 내내 특유의 재치 넘치는 말로 엄청난 인기를 끈 스타 중에 스타. “한국 영화가 그동안 왜 아카데미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냐”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아카데미는 로컬 시상식이지 않냐”라고 했던 답변은 단연 그의 최대 유행어가 됐다.

골든글로브에서는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자막을 봐야하는 외국 영화에 대해 배타적인 미국 관객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자막을 "1인치의 장벽"이라고 표현해 찬사를 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수상 이후 무대에 올라 “내일까지 마실 준비가 돼 있다!”라며 유쾌한 소감을 건네는가 하면, 감독상 수상 이후에는 함께 후보에 올랐던 79세의 거장 감독 마틴 스콜세이지의 어록을 읊으며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를 전하는 수상소감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뿐만 아니다. 얼마 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채프먼 대학의 영화·미디어 예술 칼리지가 마련한 온라인 마스터클래스 수업에 객원 강사로 출연해 미국의 영화인들에게 아시안 증오범죄 문제에 맞서달라고 촉구해 시선을 모았다.

봉 감독은 이 강연에서 “미국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 범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운동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라며 “지금 영화 산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며, 영화는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다”면서 장르상 한계를 말한 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그런 점 때문에 창작자들과 제작자들은 (증오범죄) 문제를 다루는 것을 더 용기있게 할 수 있다. 영화인들은 이 문제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용기있는 소신 발언은 선한 영향력으로 많은 영화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kiki2022@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