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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자율형 사립고와 교육계

중앙·이대부고도 이겼지만…‘시한부’ 자사고의 운명은? [정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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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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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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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승의 날 교탁에는 카네이션 대신 소장이 올라와 있습니다. 서울 지역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들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이들 학교에서 자사고 지정 취소에 항의하는 행정소송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8월, 서울시내 8개 자사고를 평가 점수 미달 등을 이유로 지정 취소를 결정했습니다. 이 학교들이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내며 이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행정법원은 학교 측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14일 서울행정법원은 중앙·이대부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 취소가 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배재·세화고와 숭문·신일고 모두 교육청을 상대로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학교의 운명은 ‘시한부’에 가깝습니다.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에 따라 2025년 모든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이화여고 졸업생 임지원씨는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모교에 대한 임씨의 기억은 좋은 편입니다. 임씨는 “학생들의 의견이 학교에 많이 반영되는 편이었고 학교에 큰 행사들이 자주 열려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사고 없앤단 소리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있었는데, 만들어 놓고 굳이 없앤다고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임씨의 말처럼 자사고 폐지 논란은 꽤 오래 전부터 논의된 문제입니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자사고 모델을 도입한 이후로 자사고는 재학생·학부모의 관심과 함께 비판도 끊임없이 받아왔습니다. 한쪽에서는 자사고가 학생이 원하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다며 존치를 주장합니다. 반면 자사고가 입시 위주의 고교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2025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고교학점제 도입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이기도 합니다. 정말 자사고는 이대로 없어지게 될까요? 없어지는 것이 맞는 방향일까요? 자사고 이후의 학교는 어떤 교육의 장이 돼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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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 교장연합회의 교장들과 학부모연합회의 학부모들이 2019년 12월18일 서울 중구 이화외고에서 교육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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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법원은 자사고 손 들어줬다, 헌재는?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이 제기된 것은 2019년입니다. 당시 자사고 지정이 취소된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속·한대부속 등 서울 지역 자사고 8곳이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인데요. 지난 2월 이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단이 나왔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배재·세화고가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이어 3월과 5월 각각 숭문·신일고와 중앙·이대부고가 낸 소송에서도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절차적 정당성’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 재지정 평가지표를 신설·변경하는 과정에서 학교 측에 변경 내용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습니다. 오는 28일에는 경희·한대부고에 대한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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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교육법 시행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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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해도 이들 학교의 자사고 지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부의 고교 교육 정상화 정책에 따라 2025년 모든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되기 때문인데요. 일반고 일괄 전환의 근거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입니다. 교육부는 2019년부터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으로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왔습니다. 이어 2020년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설립 근거인 시행령 90조 6항과 91조를 삭제했습니다. 개정안은 2025년 3월1일부터 시행됩니다.

주목할 점은 이 시행령 개정에 대한 헌법소원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5월 자사고·국제고 24개 학교법인은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교육부 시행령은 헌법상 보장된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고 교육에 관한 것은 법률로 정하도록 한 교육제도의 법정주의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는데요. 헌법소원의 결과는 내년에 나올 전망입니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해당 시행령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한다면 2025년 일반고 일괄 전환 정책은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자사고의 운명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린 셈입니다.

왜 2025년일까?

자사고는 정말 없어져야 할까요? 자사고의 도입 취지는 획일화한 교육 과정 대신 학생이 원하는 심화·전문 교육을 받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교육을 위해 학생의 선택권과 학교의 선발권을 보장했습니다. 2002년 민족사관·포항제철·광양제철고가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된 이후, 2010년 이명박 정부는 다양한 교육 수요를 수용하겠다며 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한 ‘자율형 사립고’ 모델을 확대 도입했습니다. 학생 선발의 자유를 가지는 자사고는 일반고와는 다르게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내세우며 학생들을 유치해 왔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 공간의 분리가 소위 ‘귀족학교’, ‘특권학교’를 만들며 고교 서열화에 일조했다는 것입니다. 전경원 경기도 교육정책자문관은 지난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사고를 유지하는 것은 경쟁과 서열화를 내세운 교육철학에 동의하는 것”이라며 “서열화한 교육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도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문화가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입시 위주 교육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우수한 입시 결과를 내는 교육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입니다. 교육부는 2025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통해 고교 서열화와 교육의 질 저하를 막겠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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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시민단체들이 참가한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 회원들이 2017년 7월4일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외고 등 특권학교 폐지를 위한 요구와 활동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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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이라는 연도에 주목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실 교육부가 2025년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시점으로 내세운 이유는 그 해 고교학점제가 도입되기 때문입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지난 2월19일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2025년에 자사고, 외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말씀은 여러 차례 드렸다”며 “고교학점제하고도 연계가 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고교학점제란 학생이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인데요. 학교 유형에 따라 다른 교육과정이 이뤄졌던 과거와 달리, 일반고에서도 학생이 원할 경우 특목고 수준의 심화·전문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교육부는 이와 같은 변화가 고등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고교학점제를 도입해 양질의 다양한 교육을 특정 학교의 학생만이 아닌 모두가 누리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또 다시 반쪽짜리 정책이 되지 않으려면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과 함께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정말 고교 서열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전 교육정책자문관은 “고교학점제의 취지 자체가 개인의 요구와 역량에 맞춰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며 “자사고가 존치하지 않는다 해도 수월성 교육과 수준별 학습은 고교학점제를 통해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자사고에서 제공했던 양질의 다양한 교육을 일반고에서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미비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자사고가 없어진 후에도 같은 질의 교육을 담보하려면 공교육 황폐화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는 지난 11일 통화에서 “고교학점제는 (학생) 개인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면서도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면 강남쏠림 현상은 더 심화될 것이다. (자사고를 존치시켜) 학교 간의 경쟁을 유도해 공립고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입시 구조의 변화 없이 일반고 전환과 고교학점제의 성공을 속단하는 건 지나친 낙관론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송경원 정의당 교육분야 정책위원은 지난 10일 경향신문에 “고교학점제에 맞는 수능 형태를 구체적으로 내놔야 한다”며 “지금 상태로 그냥 두면 다음 정권에서 고교학점제가 유야무야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최소한 수능 최저등급을 완화하거나 수시에는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지 않아야 고교학점제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입시와 학업성취도가 중요한 현실 속에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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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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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폐지 이후, 학교는

자사고 폐지와 고교학점제 도입에 대한 시각 차이는 학교의 역할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더라도 자사고를 여전히 존치시켜야 한다고 보는 쪽에서는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서비스’에 주목합니다. 김 교수는 “모두가 앞다퉈 자사고에 자식을 보내려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교육의 서비스와 질이 좋은 학교에 사람이 몰리는 현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가의 평준화·획일화한 서비스로 민간 영역의 교육열을 막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교육공동체’로서의 학교를 강조합니다. 전 교육정책자문관은 “경쟁 위주의 서열화한 교육을 강조하다 보면 협력이나 배려의 교육 공동체는 훼손이 된다”며 “다양한 구성원들이 학급을 구성할 때 그 안에서 학생들이 성장하고 배우는 폭이 커진다. 점수에 의해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만 모아두면 그 안에서 동료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자사고 이후의 새로운 학교는 ‘교육서비스 제공자’와 ‘교육 공동체’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둬야 할까요? 자사고 폐지를 4년 앞둔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입니다.

민서영·김흥일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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