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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이슈 윤석열 검찰총장

    "빨갱이" 들으며 한 권력수사···또다른 '윤석열' 검찰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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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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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김오수 검찰총장. 연합뉴스


    오늘의 '윤석열'은 윤석열(사법연수원 23기) 전 검찰총장이 아니다. 그를 포함해 서슬 퍼런 '살아있는' 권력 핵심 인사들의 각종 의혹을 법과 원칙 그리고 검사의 양심에 따라 수사한 검사들을 말한다.

    대중에게 '윤석열'은 이미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윤 전 총장이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댓글과 국정농단 사건부터 지난 3월 퇴임 직전까지 문재인 정권 핵심 인사들의 비리 의혹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잣대로 수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다. 여의도를 향해 떠난 윤 전 총장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검찰청법에 적힌 대로 '공익의 대표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최선을 다했던 검사 윤석열은 기억 속에 남겼다. 또 남은 후배들은 "정치 검찰" "도려내야할 곪은 환부"라는 비난 속에서도 검사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윤 전 총장 후임인 김오수(20기) 검찰총장 취임에 맞춰 또 다른 '윤석열'들은 검찰을 떠나고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관련 사건을 총괄 지휘한 오인서(23기) 수원고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는 불법 출금 과정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당시 선임행정관)에 대한 기소 승인을 3주 가량 뭉갠 대검찰청 수뇌부에 항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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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인서 수원고검장이 지난 3월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고검장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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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 관련자들을 서울동부지검이 무혐의 결론을 내리자 이에 대한 재수사를 착수한 조상철(23기)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수사를 총괄했다가 일선에서 배제된 배성범(23기) 법무연수원장도 검찰을 떠난다.

    이들 고검장은 추 전 장관이 지난해 12월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징계를 추진할 때 반대하는 집단 성명을 주도했다. 이미 대법원이 6년 전 결론 낸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사건을 뒤집기 위해 지난 3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팀의 모해위증 혐의 관련 수사지휘 명령을 내릴 때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들에겐 권력의 압박보다 법과 원칙, 주권자 국민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이해타산을 따지면 적자투성이일지 모른다. 인사권을 가진 정권의 심기를 건드린 끝에 돌아온 건 좌천성 인사, "인사 적체"란 비아냥과 사퇴 요구였다.

    하지만 검사 오인서는 1일 검찰 내부망에 "떠나는 순간까지 검사로서 제 정체성이 무엇인지 반추하게 된다"고 적었다. "실정법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의 간극을 느끼며 형사법 소추, 집행기관의 한계를 절감한 적도 있었다"며 "물러터진 검사라는 핀잔을 받고 악질 검사라는 수군거림도 경험했고 수구 꼴통 검사와 빨갱이 검사 소리도 다 들어봤다"라고 하면서다.

    권력 수사 방해에 항의 사표를 냈지만 검찰이 사회 변화에 걸맞으면서도 본연의 역할을 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이 완성되기를 기원했고, '사단'과 '라인'이란 분열의 용어 대신 '내부 화합'과 '일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도 했다.

    검사 배성범도 "검사는 형사법 원칙에 따라 중대한 의혹과 혐의가 제기되면 대상이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사실과 증거를 쫓아 진실을 밝히는데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없지 않지만, 검사는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해소하고 사회적 공정과 정의에 기여할 수 있는 귀한 직분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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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후 청와대에서 신임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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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보다 세 기수 선배인 김오수 검찰총장이 1일 취임했다. 지난해 4월 법무부 차관 끝으로 공직을 떠난 이후 정부 요직마다 하마평에 오른 끝에 장관급 검찰총장 자리에 앉게 됐지만 그의 마음은 떠나는 이들보다 가볍지 못할 것이다. 당장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 고위급 인사 물갈이와 더불어 검찰의 권력수사 역할을 포함한 직접수사를 대폭 축소하는 조직개편을 예고해 검찰 내부의 반발이 큰 상황이어서다.

    검찰 인사를 두고선 김학의 출금 수사 외압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23기) 중앙지검장, 윤 전 총장 징계 국면에서 '1인 5역'의 맹활약을 했던 심재철(27기) 남부지검장, 추 전 장관 아들 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분 내린 김관정(26기) 동부지검장이 서울고검장·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에 중용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차장·부장검사 인사에선 소위 청와대가 연루된 권력사건을 수사한 수사팀이 공중분해될 것이라고도 한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는 김 총장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느냐에 달렸다. 그는 첫 출근길에 정치적 중립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검사로서 법과 원칙에 따라 당연히 일해야하고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취임사에서도 "모든 사건에 대해 사회적 능력과 신분에 관계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의 책상엔 이미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의 결재판이 놓여있을 것이다. 국민의 요구는 권력자를 무조건 기소하라는 게 아니라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그 결과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는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 하려면 일본에 맞서 독립운동하는 것만큼 목을 내놓아야 하는 시절이 됐다"는 일선 검사의 성토를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김 총장이 법과 원칙대로 검찰을 이끌어 '윤석열'을 대체하는 '김오수'라는 새로운 아이콘이 되길 바란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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