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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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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구름 맛집’ 월출산 운해 사냥을 나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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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가 낀 월출산. 사진 김강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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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성가신 계절이다. 그러나 산행 계획 시 비 소식은 훌륭한 지표가 된다. 기상청 산악 날씨를 들여다봤다. 중요한 것은 비가 내린 후 이튿날 정보! 아침의 습도는 90%, 바람은 적정, 낮에는 해 표시. 습도가 높은 동시에 일교차가 크다는 것은 ‘운해’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기 전 이른 아침이어야 한다. ‘간만에 운해 사냥을 나서 볼까?’ 마치 야반도주를 하듯 야밤에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달이 떠오른다’는 뜻의 월출산.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있는 국립공원이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 고려 시대엔 월생산이라고 불리다가 조선 시대부터 월출산이라고 불렸다. 전라남도 기념물 3호이며, 깎아지른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으로 여겨진 월출산은 가장 인상 깊었던 산이자 꼭 다시 찾고 싶은 산으로 꼽히는 곳이다. 6년 만에 다시 찾는 월출산은 여전할까?

출발시각은 새벽 4시. 국립공원 입산 시간 지정제로 인해 하절기에 가장 빠르게 등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어스름한 어둠이 깔린 새벽, 시원한 공기가 몽롱한 세포를 깨운다. 간밤에 내린 비 때문에 우렁찬 계곡 소리가 울려 퍼지는 바람 골을 타고 오른다. 대자연의 거친 숨결에 솜털이 바짝 섰다. 뜨겁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산행을 버겁게 하는 계절인데, 이곳은 계절을 초월한 듯 시원함을 넘어 서늘하다. 일출 산행은 여름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고지를 높일수록 뿌연 안개가 몸을 감쌌다. 월출산의 정상 천황봉을 오르는 마지막 계단 앞에 섰다. 정상이 코앞인데 한 산객 무리가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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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사진 김강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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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려가세요?”

“이 날씨에 일출을 보겠다고요? 일출 꼭 보고 내려오세요~하하하”

조롱 섞인 농담이 부푼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천황봉에 올라서니 역시나 곰탕처럼 뿌연 시야가 맞아주었다. 그 속에서 몇몇 진사들이 진을 치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런 날일수록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것을 지난날의 산행 경험을 통해 익혔다. 승부를 걸어보기로 했다. 단 몇 초라도 안개가 벗겨 지길 기다렸다.

날이 밝아져 오자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벗겨지며 핑크빛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장관이 펼쳐졌다. 도톰한 이불을 덮어놓은 듯, 휘핑크림을 얹어놓은 듯한 ‘운해’였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던 운해는 스테고사우루스(쥐라기 시대의 공룡)의 등허리와 같은 사자봉을 타고 빠르게 흘러갔다. 망망대해 위에 우뚝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슬쩍슬쩍 드러나던 봉우리는 제 모습을 보였다가 덮이길 반복한다. 시시각각 새로운 풍경이었다. 우리를 조롱했던 일행이 생각나서 괜스레 통쾌하기도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보다 귀한 풍경을 만났다. 천황봉에 올라서 이 신비로운 풍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여름날의 더운 날씨도 잊고 세상만사 고민도 잊고 황홀함에 풍덩 빠졌으리라. 어쩌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매일의 아침은 이렇게 아름다운 아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드로잉 북을 펼쳤다. 신비로운 운해 위에 아스라이 펼쳐지는 산세를 담았다. 오늘의 드로잉은 월출산에 대한 예찬이자, 매일 주어지는 아침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굳은 다짐이었다.

김강은(벽화가·하이킹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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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높이: 809m

코스:천황탐방지원센터-바람골-바람폭포-육형제바위-통천문삼거리-월출산

천황봉-원점회귀거리: 총 6㎞

소요시간/실제 이동시간: 약 6시간/약 3시간 30분

난이도: ★★★

*국립공원 입산 시간 지정제에 따라 4시부터 입산이 가능합니다.

*여름철엔 산행 거리에 따라 1~2L의 충분한 물을 챙기길 추천.

*월출산 구름다리 구간은 시설 정비를 위해 6월 30일까지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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