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9 (화)

1장뿐인 힙합 전설의 음반… 美정부는 왜 극비리 팔아치웠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주가조작범 마틴 슈크렐리로부터 법원이 몰수명령

투자자 피해보상금 등 재원마련위해 처분

은박 상자에 복제 방지 장치 등 심어놓은 세상 한 장 뿐인 앨범

정부가 매입자 신원 비공개하면서 관심 증폭

우탱클랜(Wu-Tang Clan). 한국말로는 무당파다. 길거리 음악으로 치부받던 힙합이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들어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 동부지역 기반의 힙합그룹이다. 20세기 세계 대중음악사에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 키플레이어로 평가받는다. 오랜 정체기와 멤버들간의 불화로 명성이 예전만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이 최근 뉴스헤드라인에 등장했다. 이들이 단 한 장만 찍어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음반으로 알려졌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샤오린(Once Upon A Time In Shaolin)’가 희대의 주가조작사건 범인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금 마련을 위해 미국 정부에 의해 강제 처분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다. 이 앨범 한장을 처분하면서 천문학적 액수의 몰수금이 탕감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음반과 뮤지션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 중이다.

조선일보

우탱 클랜이 과거 발표한 앨범 재킷. 아마존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 뉴욕 동부연방지검은 지난 27일(현지시각) 주가조작사기범인 헤지펀드매니저 마틴 슈크렐리로부터 몰수한 우탱클랜의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샤오린’ 앨범을 매각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매입자 및 매입금액은 공개하지 않는다고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앨범의 매각대금을 통해서 슈크렐리에게 책정된 징벌적 손해배상금 등 740만달러(약 85억2480만원)의 부채가 원만하게 해결됐다고 한 것을 보면 앨범가격은 최소 200만~300만 달러는 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수백년, 수십년전도 아닌 고작 10여 년전에 만들어진 음반 한 한 장이 수 십 억 대 가격까지 치솟은 것이다. 이 앨범은 극비리에 부쳐진 제작과정과 단 한 장 밖에 없다는 극도의 희소성 때문에 힙합음악계에는 일찌감치 전설의 앨범으로 불려왔다. 최근 NFT(대체불가능토큰) 열풍으로 예술작품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미 십여년전에 그런 흐름을 간파한 셈이다. ‘옛날옛적 소림에’는 2007년부터 6년에 걸쳐 우탕클랜의 활동 근거지인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녹음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우탱클랜이 과거 발표한 앨범 재킷. /아마존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단 한 장의 오리지널 음반 외에는 복제품이 있을 수 없음을 확인시키는 장치를 여러군데 마련해놓았다고 한다. 힙합가사가 쓰인 가사집은 가죽노트였고, 이 음반만이 세상에 한장 뿐인 정품임을 밝히는 인증서가 첨부됐다. 음반은 직접 손으로 문양을 조각한 수제 은상자에 넣어졌다. 이 앨범을 손에 넣으려는 음악광이자 갑부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2015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이 앨범에 대한 온라인 경매가 진행됐다. 경매업체는 제프 쿤스, 데미언 허스트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화제작을 유통시켜온 온라인경매업체인 패들에이트였다.

조선일보

세계 최고가 앨범으로 알려진 우탱클랜의 '옛날 옛적 소림에'. /Okayplayer.com. Artist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매의 최종 낙찰자는 헤지펀드 MSMB 캐피털 매니지먼트 LP의 설립자이자 바이오기업 레트로핀의 CEO였던 슈크렐리였다. 낙찰 가격은 200만 달러로 알려졌다. 금융업계와 제약업계의 기린아로 각광받던 슈크렐리가 ‘세상에 한 장 밖에 없는 억대의 힙합앨범’의 최종 소유자가 되면서 그는 문화계 큰손으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얼마 가지 않았다. 그는 투자자들을 속여 회사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수사당국의 용의선상에 올랐고, 그에 대한 혐의는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그는 민·형사상으로 처벌과 배상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유죄가 확정된뒤 온라인 경매 사이트를 통해 우탱클랜 앨범의 판매를 시도하기도 했다. 슈크렐리는 2017년 법원에서 징역 7년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선일보

우탱클랜의 히트곡을 모은 골든집 표지. /아마존 홈페이지


주가조작 사기피해자들에게 물어낼 총 38만8000달러의 보상금과 7만5000달러의 형사 벌금도 함께 선고됐다. 법원은 우탕클랜의 음반을 꼭 찝어 언급하고 그와 함께 다른 개인 소유 자산들의 몰수까지 명령했다. 민사·형사적으로 탈탈 털린 판결이다. 슈크렐리의 항소·상고가 잇따라 기각되면서 이 판결들은 최종 확정됐다. 그가 현재 가진 재산으로는 법정 배상금·벌금을 다 뱉어내지 못할 상황이 예상되자 미 정부가 결국 ‘세상에 한 장 뿐인 음반’을 직접 팔아치운 것이다. 검찰은 음반 처분 과정을 “지체된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지런하면서도 끈질긴 노력”이라고 자평하고 “이 노력을 통해 슈크렐리의 피해자 배상문제는 해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음반과 구매자를 둘러싼 이야기가 자체를 힙합가사로 써도될 것 같을 정도로 극비리에 전개된 가운데, 이제 관심은 국가가 개입한 강제경매 과정을 통해 음반을 손에 넣은 새 주인이 누구인가로 집중되고 있다.

[정지섭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