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탈레반, 인정받으려면 인권부터”
자국민 대피하기 위한 협의는 불가피
러·中, 아프간 대사관 정상 운영 ‘여유’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 외곽에 수백 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다. 지난 14일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후 국제공항에는 필사적으로 국외 탈출을 시도하는 군중이 연일 몰려들고 있다. 카불=AP연합뉴스 |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무장단체 탈레반의 합법정부 인정 여부를 두고 국제사회가 엇갈린 견해를 보이고 있다. 유럽, 미국 등 서방국가는 과거 비인도적 행적을 문제 삼으며 바로 정부로 간주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반면 중국, 러시아 등은 탈레반에 긍정적이다. 혼란 속 대규모 철수가 이뤄지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이들은 대사관도 정상 운영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美·EU “여성·인권대책부터 세워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의 합법적 집권세력으로 인식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시기상조”라며 “탈레반이 전 세계에 자신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나아가려 하는지 보여주기에 달렸다”고 밝혔다.
다만 설리번 보좌관은 미 정부는 자국민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탈레반과 논의하고 덧붙였다. CNN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아프간 수도 카불 인근에 약 5000~10000명의 미국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등도 탈레반이 국제적 인권 기준을 준수하고, 난민 증가에 책임감 있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성명에서 “탈레반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해야 한다”면서도 “탈레반은 국제인도법에 따른 의무를 존중해야 하고, 난민과 이주민 증가에 대처해 이웃 국가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정권을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탈출한 독일인과 아프간인 등 120여 명이 18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루프트한자 항공기에서 내리고 있다. 프랑크푸르트=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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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리쿠키 주유엔 영국 부대표도 유엔 안보리에서 “탈레반이 기본적인 인권을 계속해 침해한다면 아프간인과 국제사회는 (탈레반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이날 탈레반을 두고 “정당하게 선출된 민주정부를 무력으로 장악하고, 대체한 공인된 테러 단체”라며 “아프간 정부로 인정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 ‘탈레반 호의적’ 러·中, 아프간 대사관 유지
반면 러시아와 중국 등은 탈레반 정권에 호의적이다. 뉴스위크는 “카불이 점령된 뒤에도 러시아, 중국, 이란, 파키스탄은 대사관을 계속 유지하면서 탈레반과 함께 계속 나아가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국가는 탈레반과의 협의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뉴스위크는 러·중 외교 당국자들이 탈레반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통화도 마쳤다고 보도했다.
드미트리 지르노프 아프가니스탄 주재 러시아 대사는 16일 탈레반과 대사관 보안에 관한 협의를 마마쳤다고 밝혔다. 그는 카불 분위기에 대해 “평화로운 상황이며, (탈레반은) 문명화된 방식으로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있다”고 탈레반을 옹호하기도 했다.
같은날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주권과 국가 내 모든 파벌을 존중한다”면서 탈레반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말 탈레반 이인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정식으로 회담을 하기도 했다.
18일(현지시간) 탈레반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와지르 아크바르 칸 인근에서 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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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중국 당국은 탈레반이 신장위구르자치구 분리독립 단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의 테러 활동을 지원할 가능성을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 탈레반과 위구르족 모두 이슬람 수니파여서 두 단체가 힘을 합친다면 중국은 난처해질 수 있다.
화 대변인이 “(탈레반이) ETIM을 비롯한 테러세력을 제지하고,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 세력의 집결지가 되는 것을 막기를 바란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서방국가들이 탈레반을 정부로 인정할지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외교 관계를 설정하거나, 국제기구 가입 등 다양한 이익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미국 안보전문매체 ‘저스트시큐리티’는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는 데는 직접적인 양자 관계를 유지하거나, 국제기구를 통한 소통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며 “(서방국들은)국제법과 외교의 영역에서 아프간에 다양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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