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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거친 탈레반, 불안한 중러, 그걸 노린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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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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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8월 22일(현지시간) 미국 해병대원들이 국외로 탈출하려는 아프간 피란민들을 돕고 있다. / 미 해병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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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소명은 자유주의를 증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에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가 중요시하는 자유는 모든 인류에게 권리와 능력이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2003년 9월 6일,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 전파의 화신이 됐다. 중동의 정치적 불량국들을 갱생하고 미국과 닮은 국가로 만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 이라크를 통해 ‘전쟁’이 갱생을 이끌 도구임을 분명히 했다. 2003년 11월에는 이른바 ‘대중동 구상(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도 발표했다. “중동에 자유가 없다”고 단정한 부시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확산 대상으로서 중동개념을 재정립했다. 아랍연맹 22개국과 이란, 터키, 이스라엘, 파키스탄, 아프간이 이에 포함됐다. 지리적으로 서남아시아인 일부 국가가 범 중동으로 불리는 것은 이 시기 미국이 만든 분류법에 근거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흘렀다. 중동에는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웠을까. 미국은 대중동 구상의 시발점이 된 아프간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축출됐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간을 빠르게 재장악했다. 탈레반은 주요 거점도시를 장악한 지 불과 10일 만에 수도 카불에 입성하며 미국의 20여년간의 노력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미국을 향해 “철수 예정 시한인 8월 31일까지 떠나라”는 경고까지 하고 있다. 아프간 탈출을 위한 극심한 혼란 속에 미국의 사명 ‘자유주의 전파’는 어느새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무엇인가 대단히 잘못되고 있다. 중동지역의 파탄 상황이 가까운 시일 내에 종료될 것이라는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는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평가는 현실이 됐다.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부시,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으로 이어지는 미국 행정부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정치적 성격이 변해왔다. 하지만 동기간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른바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의 추구다. 이는 “미국의 자유주의가 표적으로 삼은 나라들의 민족주의, 종교를 이길 수 있다”는 이상에 근거한다.

미국의 중동개입 역시 ‘자유주의 패권’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가능한 많은 국가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변화시키고, 국제기구가 이를 통제할 수 있다면 전쟁이나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 국제적 갈등은 유엔과 같은 합의된 기구에 의해 해결 가능하다는 ‘제도주의’에 입각해 있다. 냉전 해체 후 세계가 미국 단극질서로 재편될 무렵의 자신감이 외교정책에도 녹아든 것이다.

이러한 미국 외교정책을 미어샤이머 교수는 ‘거대한 환상’,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참담한 실패’라고 비판한다. 자유주의 패권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은 항상 전쟁을 치르는 ‘영구적 전쟁’ 상태에 빠지고, 이로 인한 국제적 갈등 수준은 오히려 높아진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핵확산이나 테러리즘 문제를 초래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의 실패한 정책들로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은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표적이 된 국가의 운 없는 국민이었다”며 “미국은 중동지역이 거대한 재앙의 땅이 되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은 2019년 포린어페어스에 기고문 ‘더 많이, 더 적게 또는 다르게?(More, Less, or Different?)’를 게재하며 두 교수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리비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유럽의 난민 사태와 같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지만, 반대로 시리아에서는 미국이 덜 개입해서 난민 사태가 벌어졌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중동에서 실패한다면 이는 자유주의 패권의 실패가 아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초래된 실패라는 논리다.

양측의 복잡한 논쟁은 아프간 사태를 통해 조금씩 결과를 드러내는 중이다. 미국은 중동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다. 미국에 대항할 만한 뚜렷한 지역패권국이 없는 중동에서 빠져나오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어샤이머 교수나 월트 교수가 주장한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를 감시하며 지역패권국이 부상하는 것을 견제하는 ‘균형자(Balancer)’ 역할만 한다. 균형은 미국의 직접개입뿐만 아니라 역내 동맹국을 활용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이 향후 중동에서 추진할 세력균형도 역내 동맹국을 활용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이미 미국은 동맹국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 2020년 9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이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기한 이란 핵합의를 복원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중동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고, 만약 분쟁이 발생해도 동맹국을 움직여 균형을 맞출 수 있게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동에서 빠져나온 미국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미국에 맞설 지역패권국이 성장하는 유일한 곳, 동아시아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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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민족, 언어, 종교 / 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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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중국 봉쇄

미국은 20세기 유럽에서 독일제국, 나치 독일, 소련이 패권국이 되는 것과 아시아에서 일제가 패권국이 되는 것을 막았다. 이를 통해 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의 단극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윌리엄 월포스 다트머스대 교수는 1999년 책 <단극세계의 안정성>을 통해 미국 주도의 단극질서가 지속될 것이며 지역 안보갈등 역시 완화돼 평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 논리는 현재 중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홍콩, 대만을 둘러싼 갈등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미국의 대외정책은 단극질서 기조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의 지역패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하며 이를 견제하고 있다. 중동에서의 철군이 동아시아의 대중국 봉쇄라인 강화와 연결될 것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상황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향후 미국의 중국 견제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냐다. 중국 견제의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미국,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가 참여한 ‘쿼드’다. 한국은 쿼드 참여 대신 역내 동맹의 한부분으로만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 ‘방기(버려짐)의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인권, 자유,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토대로 중국과 대립하는 만큼 한국이 ‘방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한국에 대중국 봉쇄 역할이 가중될 상황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가 동맹국들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미국의 국제정치 학자 로버트 저비스는 “상대국의 의도와 자국이 처한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오판은 전쟁을 야기하는 주요 변수가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냉전 시기 소련과의 경쟁에 매몰돼 아프간 무장단체 ‘무자헤딘’을 양성했다. 이는 탈레반 등의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이 자라나는 토양이 됐다. 미국의 오판이 새로운 전쟁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아프간 철군은 어떤 문제를 만들 것인가. 이미 중동에 인접한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싹트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 철군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는 동아시아의 대중국 봉쇄에도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아프간전쟁 과정에서 협력자였던 반탈레반 세력인 북부동맹을 배제하고 새 정부 수반으로 하미드 카르자이를 택했다. 그는 중앙아시아 천연가스 컨소시엄에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참여한 미국 유노칼의 고문이자 로비스트였다. 미국이란 뒷배가 없었다면, 정통성과 지지기반이 없었던 그가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유달승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아프간전쟁은 흔히 ‘파이프라인 전쟁’이라고 불렸는데 카르자이를 내세운 것은 미국의 아프간전쟁의 실제 목표가 친미정권 수립을 통한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자원의 장악이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점령해 대리정권을 세워 경제적 이익을 관철하려 했다. 중국은 직접 발을 딛기보다는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효율성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유 교수는 “중국이 미국처럼 아프간의 수렁에 빠질지는 과거 아프간의 역사를 중국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국, 소련, 미국처럼 군대를 파견해 지배·통치한다면 아프간의 수렁에 빠지겠지만 과거 강대국의 전철을 따라가지 않으면 상황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탈레반의 아프간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아프간 내부를 안정화시키는 전략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그 세력이 크지는 않지만 신장웨이우얼의 분리주의 운동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 겸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아프간은 중동과 아프리카로 가는 지름길이자 유럽으로 통하는 길이다. 일대일로 사업을 연결할 전략적 요충지라 중국으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지역이다”면서 “가장 심각한 내부적 안보위협인 신장웨이우얼 문제를 위해서도 그 공간을 통제하고 안정화할 세력이 필요하고, 새로운 아프간 정부가 그 역할을 맡길 기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이런 전략이 성공한 듯 보인다. 탈레반의 새 정권은 중국과 절대 충돌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중국의 이익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는 탈레반이 내부의 다양한 세력을 통제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아프간 내부의 혼란이 내전으로 발전하고, 그 영향이 중국 국경 내로 흘러넘치면 큰 부담을 안게 된다. 중국으로선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와 공간이 생겼지만, 한편으론 엄청난 폭탄을 동시에 안게 된 셈이다.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으로 아프간에 영향력을 확장한다면 미국 역시 중국을 견제하려고 탈레반 정권을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 탈레반의 친중 행보가 의도하는 바일 수도 있지만, 이는 물론 탈레반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로 나간다는 조건 하에서다. 오히려 미국이 친중적인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견제할 군벌세력을 지원할 수도 있다. 김흥규 교수는 “이들이 중국의 힘을 뺄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인 신장웨이우얼과 연결된다면, 중국으로선 21세기 내내 머리 아파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달승 교수는 파키스탄 역시 우려할 부분이 있다고 봤다. 파키스탄 북서부의 자치정부인 와지리스탄과 파키스탄 중앙정부의 무력충돌 과정에서 탈레반이 와지리스탄의 편에서 중앙정부에 대항해 전투를 벌이다 평화협정으로 봉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다만 “중단기적으로는 아프간 내부에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어 외부에 시선을 돌릴 여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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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8월 2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나붙은 탈레반 지도자들의 포스터와 깃발 옆을 지나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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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수, 달갑잖은 러시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여당의 전당대회에 참석해 아프간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과거 아프간전쟁에서 얻은 교훈도 언급했다. 그러나 러시아 역시 탈레반에 우호적이지는 않다. 불구대천의 적일 수도 있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과거 푸틴의 러시아를 길들일 때 지렛대로 활용한 게 러시아의 체첸반군이었고, 그 체첸반군을 교육하고 자금을 대준 게 탈레반이었다”고 설명했다.

상황은 9·11테러를 계기로 반전을 맞는다. “9·11 이후 부시 대통령은 제일 먼저 푸틴에게 전화를 걸었다. 러시아가 반테러 전쟁을 하면 적극 지원하겠다. 러시아의 가려운 부분(탈레반)을 우리가 대신 해결해줄 테니 군사기지 등에서 지원을 요구한 것이다. 푸틴으로선 미국이 반테러 전쟁을 펼치면, 그간 러시아의 체첸반군 공격을 비인도적이라고 비난했던 미국이 아무 말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원해주는 등 몇가지 반대급부도 얻었다.”(홍완석)

러시아의 인구는 1억4300만명인데 이중 이슬람 인구는 1500만명 정도이다. 소비에트 시절 연방에 속했던 이슬람 국가들은 세속화됐다고는 하지만 체첸과 타타르스탄, 다게스탄, 카바르디노발카르 등은 러시아도 함부로 못 하는 자치공화국이다. 체첸이 분리독립을 하면 러시아 연방 안의 다른 자치공화국도 분리독립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 타타르스탄이 유력하다. 이런 체첸의 분리주의 운동을 지원한 탈레반을 미국이 손봐준다고 하니 당시 소련 붕괴 직후라 군사력과 재정이 부족한 러시아로선 반길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탈레반의 복귀는 러시아 내 이슬람 원리주의 확산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권위주의 체제인 인접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에서 아직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힘은 약하다. 하지만 아프간과 국경을 마주한 타지키스탄이 약한 고리이다. 홍완석 교수는 “탈레반이 소련 해체 후 체첸반군을 교육하고 지원했지만, 국경을 접한 타지키스탄에도 원리주의 수출에 노력했다”면서 “그 결과 중앙아시아 이슬람 5개국 중 유일하게 타지키스탄에서만 내전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이곳의 투르크계 반군을 지원해 타지키스탄이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수중에 떨어지면 도미노처럼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홍 교수는 “서구의 견제 대상이 중국이라 중국에 더 비중을 두고 분석하지만, 안보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더 크다”며 “러시아가 아직 탈레반 정권을 승인하진 않았지만, 과거 소련 붕괴 직후와 달리 경제력을 갖춘 만큼 강온 양면전술로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아프간에서 미국이 철수한 것은 포기가 아니라 전략의 수정에 가깝다. 과거 20년간 미국이 아프간에 주둔한 이유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을 막을 수 있는 ‘일타삼피’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지만 이젠 오히려 철수함으로써 이들 3국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이 물러난 공백으로 러시아와 중국 지도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 있다. 홍 교수는 “미국은 향후 탈레반과 협력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흔드는 전략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이 제국의 무덤을 극복해 중화제국의 확장과 명실상부 글로벌 패권국가로 자리매김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아프간 정부가 향후 국제사회의 바람처럼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형태를 띨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큰 편이다. 우선 탈레반이 발표한 국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뒤에 공화국을 지우고 ‘에미리트’를 붙였다. 1차 집권 당시 국명과 같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공화국이 아니라 종교적 최고 지도자가 정권을 갖는 정치체제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다양한 정파가 참여하는 정부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의 재정 지원 없이는 체제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이끄는 아프간 정부의 미래

유달승 교수는 “탈레반은 지난 8월 23일(현지시간) 부족 지도자들의 회의인 ‘로야 지르가’를 열어 1747년 아프간이 근대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부족세력과 제정파의 지지를 얻어서 국가를 구성했다는 걸 표방했다”며 “이걸 보면 과거처럼 단독정부보다는 형식적으로나마 다양한 정파를 내각에 참여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탈레반 중앙정부가 포용적 정책을 편다고 해도 지방 곳곳에선 불미스러운 사태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북부동맹을 중심으로 저항의 움직임이 있지만, 대세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부상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지배에서 나온 반작용일 수 있다. 탈레반의 탄생과 부활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탈레반이라 안 된다’가 아니라 탈레반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국제사회가 공조해 비극을 종식시키고 화합을 이끌어야 한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탈레반의 정책에 동의하든 안 하든 탈레반의 재집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프간 사태를 올바로 파악하는 시각”이라면서 “아프간의 혼란을 조기에 종식하려면 국제사회가 탈레반을 인정하고 재건을 지원하면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그 비도덕적·반윤리적 행동에 침묵하기보다 한목소리로 대응해야 진정으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아프간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할 수 있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가 이란과 파키스탄인만큼 국제사회가 난민문제에 적극 대처한다면 두 국가에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이란이 핵 합의를 새롭게 적극 추진할 동인이 있다고 봤다.

주영재·김찬호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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