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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美의 뒤늦은 반성 “아프간서 돈이면 다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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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기관 실패 보고서 “美정부에도 상당한 책임”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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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한 다음 날인 지난달 16일 미 정부기관인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아프간 재건 20년이 준 교훈’이라는 제목의 140쪽짜리 보고서를 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왜 실패했는지 그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다. 수천 건의 정부 서류를 분석하고 760여 명의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작성했다고 한다.

미 정부는 아프간 정부 붕괴의 원인을 현지인들의 부패와 무능 탓으로 돌렸지만, 보고서는 미국 정부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봤다. 특히 미국 정부가 진행한 아프간 군·경 교육이 얼마나 엉망으로 진행됐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탈레반 등 반군 세력에 맞서 아프간인 스스로 치안을 유지하도록 경찰 교육을 담당할 미국인 자문관들을 파견했다. 그런데 이 중 일부는 헬기 조종사 등 경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도 잘 모르는 경찰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NCIS’나 ‘캅스(Cops)’ 같은 미국 범죄 드라마를 봤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민간 부문 인프라 재건사업을 위해 파견된 전문 인력 중 일부는 이 분야 경험이 전혀 없는 생화학전 대응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에게 업무를 속성으로 숙지하도록 파워포인트로 4주 동안 속성 교육이 실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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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조롱… 美·英·佛 국기 덮은 관으로 가상 장례식 -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남동부 도시 호스트 거리에 모인 군중이 미국·영국·프랑스 국기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깃발 등으로 덮은 관을 들고 행진하며 미군 철수를 자축하고 있다. 아프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은 전날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자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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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지난 20년간 아프간 정부군 재건을 위해 830억달러(96조2385억원)를 쏟아부었지만, 해마다 3억달러가량이 이른바 유령 군인(월급을 빼돌릴 목적으로 서류상으로만 등록한 가짜 군인)들의 월급으로 나갔다고 보고서는 추산했다. 이런 비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시적인 자체 감시 체계가 발동해야 하지만 거의 작동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령 군대가 눈먼 돈을 빼가고, 미군이 지원한 각종 첨단 무기와 장비가 빼돌려지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모니터링만 제대로 됐더라도 실제 병력이 훨씬 부족하고, 군인들이 무기를 탈레반에 넘겨 무기고가 비어 있는 상황도 미리 알아챘을 것이란 얘기다.

재건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비현실적인 시간표를 설정해 서둘러 돈을 쏟아붓는 일이 되풀이됐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런 주먹구구식 재건사업이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아프간 정부 내 부패를 초래하고, 재건 사업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보고서는 아프간 재건을 “‘20년간 진행된 사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1년짜리 사업의 스무 번 반복’이라고 보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장기적 플랜 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목표만 추구해 비효율적인 재원 투입이 난무했다는 뜻이다.

불안한 치안은 아프간 경제 발전과 민주제도 정착을 어렵게 했다. 현지 사정에 대한 깊은 이해도 부족했다. 관습의 영향이 큰 아프간 사회에 일방적으로 서구 법체계를 도입하려다 반발을 불렀다.

SIGAR는 아프간 재건 사업 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효율성 강화를 위해 2008년 미 하원이 설립한 독립기관이지만,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해체 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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