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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윤평중 칼럼] 정치는 책략 너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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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국민 위해 일한다는 정치의 근본 사라지고

대선, 사생결단 亂戰으로 음모·책략의 거짓 정치 넘어

도덕성에 뿌리내린 책임·희망의 정치 절실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정치의 근본이 사라졌다. 진정한 경세(經世)의 리더십은 간 곳 없고 선거 승리만을 노린 모략이 난무한다. ‘정치는 나라를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이며 ‘국가는 최선의 삶을 실현하는 공동체’라는 당위를 비웃는 정치 모리배들이 활개 친다. 너무나 많은 권력과 이권이 걸려 있는 대통령 선거가 사생결단의 난전(亂戰)으로 비화하고 있다. 책략으로 물든 정치판엔 도덕과 규범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현실 정치와 이상(理想) 정치를 가르는 심연은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상 국가를 위해 공자는 천하를 헤매야 했고 플라톤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초래한 중우정치를 혐오한 플라톤은 진리를 실현할 철인왕의 이상 정치를 그렸다. 몰락한 아테네와 스파르타 대신 기원전 4세기 지중해 세계의 맹주로 떠오른 시라쿠사에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시라쿠사의 참주(僭主) 디오니시우스 1세(BC 430~BC 367)와 2세(BC 395~BC 343)를 통한 철인 정치를 꿈꾼 플라톤의 시도는 권력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난파하고 만다. 겨우 목숨을 구해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의 행로는 철학자의 이상 정치가 현실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다.

조선일보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극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하벨이 1990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후 지지자들 환호에 답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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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상 정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도 있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 독재에 저항해 5년간 수형 생활을 한 작가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1936~2011)은 ‘후기 전체주의’의 선전·선동이 만든 ‘거짓 안에서의 삶’에 끊임없이 경종을 울렸다. 1968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외친 ‘프라하의 봄’이 소련 탱크에 짓밟혔어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하벨은 권력·부(富)·명성을 노린 정치 투쟁을 넘어 인간다움을 고민하고 성숙한 시민 정신을 실행하는 정치의 도덕적 지평을 천착했다. 이것이 바로 ‘실천 도덕으로서의 정치’다.

폭력과 이권에 굴종하고 패거리 대중 심리에 매몰된 삶은 거짓된 삶이다. 하벨의 통절한 자기 성찰은 포퓰리즘적 진영 대결과 승리 지상주의의 포로가 된 한국 정치를 깨우는 죽비다. 우리가 일상의 매 순간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진리 안에서의 삶’을 살 때 도덕성에 뿌리내린 정치가 탄생한다. 실천 도덕의 정치는 책략과 이익만을 중시하는 거짓 정치를 넘어 의미 있는 삶을 지향하는 ‘반(反)정치의 정치(antipolitical politics)’이다.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삶이 더 나은 체제를 만든다’. 우리네 일상의 삶이 바뀌어야 정치도 바뀐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 독재는 1945~1989년에 걸쳐 25 만명의 정치범을 양산하고 감옥과 광산 등지에서 3000명을 사망케 했다. 실천 도덕의 정치는 철권통치 앞에 무력해 보였다. 하지만 역사의 길은 달랐다. 1977년 ‘77-헌장’을 거쳐 1989년 평화적 시민혁명(’벨벳 혁명’)으로 승화된 실천 도덕의 시민 정치로 공산 독재는 무너지고 하벨은 대통령이 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벨이 현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뒤에도 권력으로부터 성찰적 거리를 유지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다. 실천 도덕의 정치가 현실에서도 유효함을 입증한 삶이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고 정치인은 실정(失政)을 저지른다. 하지만 각자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며 거짓된 삶에 질문을 던질 때 ‘힘없는 자들의 힘’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 실천 도덕의 정치는 낡은 규범을 현실에 강제하라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현실이 어지러울수록 삶의 근본을 돌아보아야 한다. 음모와 책략으로 오염된 현실 정치의 악취가 진동할수록 책임 정치와 희망의 정치가 절실해진다. ‘공인으로서 세상에 내보낸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직을 버린 윤희숙 전(前) 의원의 결정이 실존적 울림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삶에서 무엇이 옳은지 섬광처럼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드문 일이긴 해도 현실 정치가 이해타산과 진영 논리를 넘어 진리 안에서의 삶과 만날 때가 있다. 정치가 ‘불가능의 예술’로 승화되는 소중한 순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반(反)민주적 악법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거부해 민주주의자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증명해야만 한다. 마침 9월 15일은 2007년 유엔이 제정하고 세계인이 기리는 ‘세계 민주주의의 날(International Day of Democracy)’이다. 정치의 궁극은 책략을 넘어선 곳에 있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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