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시점·기술지원 등 선진국·개도국 이해대립 심각
지난 31일(현지 시각)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는 영국 글래스고 스코티시이벤트캠퍼스. 3m 높이 대형 철책으로 빙 둘러싸인 회의장 주변에 스케치북과 종이상자를 뜯어 만든 피켓을 든 환경운동가 30여 명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성과 없는 COP26은 안 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게릴라 시위를 벌였다. 철책을 따라 약 18~27m 간격으로 경비를 서던 경찰 50여 명이 달려들자 이들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전 세계 196국 대표단과 각국 정상, 시민 단체와 언론인 등 3만여 명이 참여하는 COP26이 개막과 동시에 “빈껍데기 합의만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적 전망에 직면했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기후협약 사무총장은 AP통신에 “COP26에서 중대한 합의가 도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고, 선진국이 개도국의 탄소 저감을 위해 연간 1000억달러(약 117조원)를 내놓는다는 목표에 COP26이 접근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부정적 기류는 COP26의 리허설 무대로 평가됐던 G20에서 주요국 정상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통 큰 합의’나, 기존 합의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G20 정상들은 코뮈니케(공동선언문)에서 탄소 순(純)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목표 시점을 ‘금세기 중반’으로 얼버무렸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때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빠른 탄소 저감을 돕기 위해 매년 1000억달러씩 지원키로 한 것도 명확한 이행 시점 없이 약속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국제 단체와 외신들은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국제 비영리단체 옥스팜은 “로마에서 보여준 우유부단함과 분열이 (COP26마저 좌초시키며) 지구를 불태울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더 많은 나라가 모이는) COP26에서는 돌파구를 찾기 더 어려워질 것 같다”고 했고, 영국 BBC는 “정상들이 말로 약속만 하고, 책임은 거의 지지 않는다”고 했다.
COP26에서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이해 대립이 반복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선진국들은 탄소 중립 시점을 2050년으로 못 박으려 하지만,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과 인도,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반대가 거세다. 중국은 탄소 중립 달성 시점을 2060년으로 잡았고, 인도는 아예 설정도 하지 않았다.
개도국들은 COP26에서 파격적 합의가 이뤄지려면 선진국의 재정·기술 지원이 이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G20 행사에서 화상으로 “선진국은 개발도상국 자금 지원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탄소 저감을 위한) 기술 보급에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넘게 막대한 탄소를 배출해온 선진국들이, 뒤늦게 탄소 배출이 늘고 있는 개도국의 탄소 감축을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1일 개막한 COP26 정상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G20 주요 멤버 대부분이 그대로 참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G20에 이어 COP26도 불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1일 바티칸에서 “COP26 참석 정상들이 지구와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COP26이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우회적으로 종용한 것이다. 미국 정부와 백악관도 1일 2050년까지 미국이 앞장서 탄소 중립을 이룩하는 ‘넷 제로(Net Zero)’ 전략과 함께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2024년까지 매년 3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며 다른 국가들을 압박했다. COP26 의장국인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 개막사에서 “세계는 기후 위기로 인한 종말의 시계가 자정을 알리기 1분 전”이라며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말했다.
[글래스고=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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