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선거 위원들이 전국 지방선거가 열린 지난 1일(현지시간) 요하네스버그에서 개표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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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지방선거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27년 집권 이래 처음으로 과반 득표 실패 위기에 처했다. 만델라 넬슨 전 남아공 대통령의 유산이라고도 불리는 ANC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체제를 무너뜨리고 흑인 인권 진보에 앞장서며 남아공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정부 인사 부패 사건이 잇따르고 무능이 드러나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년 후 열리는 총선에서 야당이 ANC와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남아공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다음날인 2일(현지시간) 개표가 67% 이상 완료된 상황에서 ANC가 46.21%, 민주동맹(DA)은 21.83%, 경제자유전사(EFF)는 10.29%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인구가 가장 많은 요하네스버그에서는 ANC가 가장 많은 표를 얻고 있지만 행정 수도 프리토리아와 입법 수도 케이프타운에서는 DA가 앞서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257개 도시의 시의원과 시장을 선출한다.
ANC는 흑인 인권 운동을 벌여오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집권에 성공한 남아공의 역사적인 정당이다. 남아공 최초 흑인 대통령 만델라도 1991년부터 6년간 ANC 의장직을 지냈다. 1912년 만들어진 남아프리카원주민민족회의(SANC)가 전신이다. 당시 집권하고 있던 국민당의 탄압으로 80여년간 정식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1994년에야 처음 총선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해야 한다는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면서다. ANC 소속이었던 사람들은 국민당 정부에 의해 옥살이를 하거나 해외에 망명했다가 1994년 만델라 대통령 집권 후 남아공의 주요 정치 세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ANC의 집권이 길어지면서 소속 정치인들의 부패 행각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은 사저 개보수에 세금을 유용하는 등 국정농단 혐의를 받고 2018년 자리에서 내려왔다. 주마 전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성폭행, 돈세탁 등 수많은 혐의가 제기돼 야당은 9차례 탄핵을 시도했지만 의회 과반을 차지한 ANC는 탄핵을 막아왔다. 에이스 마하슐레 전 ANC 사무총장, 샤비르 샤이크 주마 전 대통령 법률고문 등도 돈세탁, 사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정부 무능으로 남아공의 경제상황도 심각하게 악화됐다. 특히 ANC가 집권 직후 백인과 흑인의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경제정책인 ‘흑인경제력육성’ 프로그램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능한 사업가와 정부가 유착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집권 직후 토지 개혁과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봉쇄령 장기화로 경제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으며 남아공 실업률은 지난 2분기 34.4%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7월 전국에서 무능한 정부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와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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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ANC의 지지율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2016년 지방선거에서 53.91% 득표율을 기록하며 겨우 과반을 넘겼는데 이는 ANC 창당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당시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넬슨만델라베이 등 세 주요 도시에서 처음으로 야당인 DA가 승리를 거뒀다. 2019년 총선에서는 57.5%로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했다.
ANC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과반표를 얻지 못하면 다음 총선에서 야당과 연정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남아공 정치분석가 랄프 마텍가는 “더이상 패권 정당이 남아공을 이끌지 않을 수 있으며, 라마포사 대통령의 자리 유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남아공은 대통령을 의회가 뽑는 간선제를 택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공에는 ANC를 대체할 힘을 가진 정당이 없다. 의회에서 ANC는 상원 전체 90석 중 54석을, 하원 전체 400석 중 230석을 차지하고 있다. 제1 야당인 DA는 상원과 하원 각각 20석, 84석만을 차지하고 있다. DA는 중도적인 정책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왔지만 ‘백인들의 정당’ 이미지를 안고 있어 한계를 가지고 있다. EFF는 토지 무상몰수, 광업·은행 국유화 등 급진적인 정책을 밀고 있어 많은 유권자들을 겁먹게 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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