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장·옥과장
늦가을 곡성장의 주인공은 토란과 생강이었다. 옥과천, 보성강, 섬진강이 흐르는 곡성에서 전국 토란 생산량의 40%가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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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가을에는 뭣이 중헌디? 곰곰이 생각했다. 종자다. 농부는 수확과 함께 내년 농사지을 종자 또한 거둬들인다. 농사는 이렇게 생존과 번식의 중심이었다. 거둬들인 낟알을 이듬해에 논이며 밭에 뿌리고 심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농촌에 종자 회사가 들어오면서 이런 모습은 사라지고, 씨앗은 사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동네마다 달랐던 쌀이며, 푸성귀의 맛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고 사라지는 종자를 발굴하고 다시 퍼트리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 곡성에 있다. 가을날, 어디를 가든 다 맛있다. 그중에서 곡성을 선택한 큰 이유가 곡성에 ‘토종씨드림’이 있기 때문이다.
곡성장(3·8일장)이 열리기 전날에 토종씨드림을 찾았다. 곡성장보다도 여기가 먼저였다. 산을 개간한 넓은 밭에 다양한 채소를 심고, 수확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한다. 제주에서 구억배추 씨앗을 찾아내서 전국으로 퍼트린 곳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떠나기 전 토종배추를 구경했다. 다른 배추는 없었고 ‘조선배추’만 있었다. 토종배추는 결구하지 않는, 즉 속이 차지 않는다. 얼갈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야기 듣다가 벌레가 적당히 먹고 떠난 배춧잎을 따서 먹었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진한 향이 입안을 맴돌았다. 수분이 많고 고소한 지금의 배추와는 사뭇 달랐다. 지금 배추의 원종은 중국 산둥성 배추다. 속이 꽉 들어차지는 않지만 씹는 식감과 고소·구수·달곰함을 모두 가진 것이 토종배추의 매력이다.
작고 아린 맛 적은 ‘토종 생강’ 잎과 줄기에도 성분이 가득 뿌리로 알고 있는 덩이줄기와 땅 위 줄기까지 버릴 게 없다 |
곡성장이 가장 크지만 옥과장(4·9일장)은 작아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고 한다. ‘선수들’보다는 할매가 많다고 한다. 곡성 오일장터는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천장이 있었다. 입구에서는 여전히 체온을 재고, 출입을 등록하고 있었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시장 탐색이 먼저다. 단골이야 가던 곳을 가면 되지만, 외지인은 탐색이 중요하다. 돌다 보면 비슷한 가격에 물건이 좋고 나쁨이 보인다.
늦가을의 곡성장은 토란과 생강이 주인공이었다. 한쪽의 잡곡상은 팔고 사느라 정신이 없지만, 앞에 놓인 바구니마다 두 작물이 빠지지 않고 있었다. 생강은 좀 크다 싶으면 중국 종이다. 토종 생강은 작다. 아린 맛이 적어 엿이나 조청 만들기에 적합하다. 시장을 돌다가 청과 차를 만들 요량으로 줄기와 잎이 싱싱한 녀석으로 골랐다.
숯불구이 대신 ‘흑돼지 간짜장’ 거부할 수 없는 짜장면의 유혹 밥때에 곡성 지난다면 이거다 |
생강 줄기는 버리는 것 아닌가 싶지만, 아니다. 버려서는 안 된다. 잎과 줄기에도 생강만큼이나 다양한 성분이 있어 활용하면 좋다. 생강차를 만든다 생각하면 껍질 까는 게 일이라서 쉬이 덤비지 못한다. 햇생강으로 할 때는 흙만 잘 털어내도 된다. 껍질에도 향기 성분이 있거니와 얇으므로 굳이 껍질 깐다고 고생할 필요가 없다. 집에 와서 줄기와 잎을 깨끗이 씻은 다음 물 넣고 푹 고았다. 줄기와 잎은 버리고 그 물에 생강 넣고 다시 끓여 차를 만들었다. 가식 부위로 알고 있는 생강은 많은 이들이 뿌리로 알고 있다. 아니다. 먹는 부위 또한 줄기다. 영양분을 저장하는 덩이줄기다. 지금까지 땅 위 줄기는 버렸다. 버릴 필요가 없다. 차를 끓이면서 밑동의 분홍색 부분을 씹어보니 양하와 비슷했다.
생강만큼 많은 것이 토란. 전국 토란 생산량의 40%가 곡성에서 난다고 한다. 합천장에서 찾아 헤맸던 토란대가 곡성장에서는 지천이다.
물 좋은 곳 ‘다슬기’ 맛 알지만 이번엔 구수·달큰 ‘참게수제비’ 국물까지 한술에 먹어야 제맛 먹기 한 시간 전 예약은 필수 |
시장 이곳저곳에서 할매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란 껍질 까는 데 여념이 없다. 작지만 빛나는 토란이 있어 물어보니 “토란 새끼, 큰 놈이 있으면 작은 놈이 있을 거 아녀, 그거 씻은 거”라는 답이 돌아온다. 토란 파는 할매들 사이에서 딴짓(?)하는 할매가 눈에 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조용히 할 일을 하고는 다시 이야기 속으로 참전. 붕어빵 파는 할매다. 붕어빵 기계가 요상했다. 작은 할매 몸에 최적화된, 딱 맞는 크기였다. 반죽을 붓고, 팥소를 넣고 뚜껑을 닫고, 꺼내고. 모든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다 한다. 그런데도 나오는 붕어빵의 색이 일정했다. 할매의 몸이 최신식 센서와 같아질 정도로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구웠기 때문인 듯싶었다. 옥과천, 보성강, 섬진강 세 개의 하천이 흐르는 곡성, 질 좋은 토란 나오기 딱 좋은 환경이다. 토란 관련 음식도 많다. 여기도 토란빵이 있고 만주가 있다. 읍내에 모짜르트제과점에서 우리밀과 토란으로 빵을 만든다. 모양만 흉내낸 빵과 달리 토란으로 소를 만들거니와 다양한 토란빵을 만들고 있다. 모짜르트제과점 외에도 여러 식당과 카페에서 들깨탕, 부각, 육개장, 버블티, 스콘, 아이스크림 등 토란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다녀본 지자체 중에서 특산물 활용을 잘하는 곳이 아닌가 싶다. 모짜르트제과점 (061)362-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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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일장인 곡성장은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전통시장에서 열린다. ‘할매’들이 많은 장터, 수다를 병행하며 일정한 품질의 붕어빵을 구워내는 할매도 있다. 질 좋은 토란이 나는 곡성에서는 토란빵과 토란만주뿐만 아니라 시장 곳곳에서 다양한 토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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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은 섬진강이 지난다. 아래로는 보성강이 지나기에 깨끗한 하천에서 다슬기가 많이 잡힌다. 그 덕에 다슬기 음식점이 많다. 다슬기수제비 맛은 건너뛰기 어려운 유혹, 이번에는 용케 건너뛰고 참게수제비를 택했다. 참게수제비는 한 시간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게살을 발라내는 등의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섬진강의 게는 임진강의 참게와는 다른 종이다. 가을을 흔히 참게철이라고 하는데 종에 따라 다르다. 임진강 참게는 가을에 알을 품고, 섬진강 동남참게는 봄에 알을 품는다. 미리 전화하고 가야 하는 것을 몰랐다. 주문하고는 한동안 넋 놓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주문한 수제비가 나왔다. 우선 국물, 다슬기가 시원한 맛을 낸다면 참게는 구수함과 단맛이 가득했다. 갑각류 특유의 국물이 제대로였다. 보통 수제비는 뜨거우므로 처음에는 젓가락으로 먹는다. 참게수제비는 그래서는 안 된다. 숟가락으로 국물, 살, 수제비를 한 번에 떠서 먹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곡성, 구례 출장길에 고민할 듯싶다. 짜장면과 짬뽕의 선택처럼 다슬기와 참게 사이에서 말이다. 다슬기수제비도 맛나지만 참게수제비 ‘짱’이었다. 나루터 (061)362-5030
산이 좋은 남쪽에는 흑돼지 농장이 제법 있다. 김천, 함양, 장수, 남원 등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 주변이 대표 산지다. 곡성은 높은 산은 없지만, 산지가 제법 많은 곳이다. 석곡면은 곡성에서도 이름난 흑돼지 산지로 돼지불고기가 유명하다. 토종씨드림이 있는 농장 또한 석곡면에 있기에 흑돼지 숯불구이를 먹기 위해 면 소재지를 찾았다. 주차하고 식당으로 가는 길에 중국집으로 빠졌다. 가는 길에 본 흑돼지 짜장, 흑돼지 간짜장, 흑돼지 짬뽕 메뉴. 짜장면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다. 탕수육도 흑돼지로 하는데 혼자인지라 주문하지 못하고 간짜장만 주문했다. 웍 돌리는 소리가 들리고는 이내 간짜장이 나왔다. 짜장면 고명으로 있어야 할 달걀 프라이, 오이채, 완두콩 등 세 가지가 올려져 있었다. 볶은 짜장으로 코를 갖다 대니 고소한 내가 침샘을 자극했다. 사진을 찍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바로 비볐다.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흑돼지 기름으로 볶는지 물었다. 돼지기름으로 볶으면 맛이 있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간 돼지고기를 콩기름에 볶아서 사용한다고 한다. 짜장면은 맛없기도, 맛있기도 어려운 음식이다. 일단 여기는 맛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밥때에 곡성을 지난다면 석곡 IC로 빠져서 먹고 갈 집이다. 진미식당 (061)362-3035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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