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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초유의 수능 정답 유예 사태

법원, 수능 출제 오류 인정 “정답 유지 땐 잘못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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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수험생들 정답 취소 소송서 승소
생명과학Ⅱ 20번 전원 정답 처리
평가원 항소 않기로…원장 사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 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대해 법원이 출제 오류를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15일 수험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평가원)가 생명과학Ⅱ 20번 문제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처분을 취소한다”고 했다. 이어 판결 선고일까지로 한 이 문항 정답에 대한 효력정지 결정도 연장하겠다고 했다. 해당 문제는 전원 정답 처리된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제시된 지문을 읽고 두 집단 중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찾고, 선택지 3개 항목의 진위를 가리는 문항이다. 수험생들은 지문대로 계산하면 동일집단의 개체수가 음수(-)가 되는 오류로 인해 정답을 풀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평가원은 이 문항에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 타당성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문제가 잘못 제시된 것으로 충분히 인정되며 문제에 객관적 하자가 있는 경우라고 판단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수능 과학탐구 영역이 단순 암기나 기억력에 의존한 평가를 지양하고 문제의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해결하도록 해 추리분석과 탐구능력을 측정한다는 것이 평가원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목적에 부합하려면 응시자가 문제를 해결할 때 출제자가 의도한 방법이 아니라도 가설을 설정해 다양한 풀이방법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풀이방법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면 언제든 같은 정답이 도출돼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평가원이 의도한 문제풀이 방식은 유일한 문제풀이 방식이 아니라고 봤다.

정답 오류 논란이 불거지자 평가원이 내놓은 모범 풀이 방식을 따르면 수험생들이 주장하는 오류에 봉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문제풀이를 시도하면 오류와 모순에 봉착하게 돼 평균적인 수험생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자신의 계산에 실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통상적이고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총 20문제를 30분에 푸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검토할 수 없고, 따라서 문제의 하자는 평균적 수험생 입장에서 올바른 답을 선택하는 데 실질적으로 장애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이어 “기존의 정답을 그대로 유지하면 수험생들에게 쓸데없이 생각을 많이 하고 깊이 파고들수록 불리하며, 평가원이 틀린 문제를 낼 수 있는데 본인이 알아서 잘 피해 가야 한다는 교훈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가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으며, 강태중 평가원장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강 원장은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재판부의 판결을 무겁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수험생과 학부모님 그리고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국민께 충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이번 일의 책임을 절감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현진·이호준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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