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4 (수)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맞지마! 연차 써!”...백신휴가 ‘갑질’하는 회사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차 백신 접종 휴가 안주는 곳도

전문가들 “백신 휴가는 필수사항”

#1.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이모(29·여) 씨의 회사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3차 백신 접종에 대한 휴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 회사의 직원들은 근무시간에 잠깐 백신 맞고 업무에 복귀하거나, 평일 오후에 맞고 다음날 출근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접종받는다고 한다. 이씨는 “다음날 아파도 회사에 나와야 한다”며 “회사 나오기 싫으면 금요일 오후에 접종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작은 회사의 슬픔이다”라고 하소연했다.

#2.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코로나19 확진자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A씨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그에게 개인 연차를 쓸 것을 요구했다. 감염병예방법에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별도’의 유급휴가를 ‘의무적’으로 부여하라고 적시돼 있음에도 연차를 강요받은 것이다. 더욱이 회사는 3차 접종을 하지 않으면 회사 출입이 금지된다고 A씨에게 통보한 상태다. 현재 A씨는 2차 접종 후 이상반응으로 응급실을 방문, 치료를 받아 보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코로나19가 국내에서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어느덧 코로나19 자체가 직장 부조리나 갑질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요인이 됐다. 이를 방증하듯,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 진행한 분기별 정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접수받은 사례 중 코로나로 인한 부조리, 갑질 등도 있었다. 총 1984개의 이메일 건수 중 코로나로 분류된 사례는 76개로 3.8%였다.

단체가 올해 10월에 접수받은 사례에 따르면 직장인 B씨는 자녀가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할 상황에 놓여 상급자인 팀장에게 휴가를 요청하자 “너만 아이가 있냐”며 질책을 들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이달 접수받은 사례에서는백신 휴가를 별도로 부여하지 않는 회사도 있었다. 해당 회사의 직원인 C씨는 잔여 백신 예약이 잡혀서 대표에게 외출을 요청했지만, 대표는 “갑자기 왜 근무 시간에 백신 접종을 받느냐”며 주말에 백신을 맞을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직장갑질119가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노동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체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이달 3~10일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2021년 4차)‘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비정규직은 59.1%가 코로나 19로 인한 유급 백신 휴가를 사용하지 못했다. 정규직(48.0%)이 코로나 19로 인해 유급 백신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것보다 10% 이상 높은 수치다. 여성, 비노조, 30인미만, 월급 150만원 미만 노동자들의 60~65%가 백신을 맞고 단 하루도 유급휴가를 얻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기업에서 백신 접종에도 휴가를 주지 않거나, 병가를 쓰는 식의 결정이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백신 휴가는 법에 근거한 게 아닌 자율적인 규율이 맞다”면서도 “백신을 맞는 게 강제는 아니지만 사실상 안 맞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백신 접종에 일괄적으로 병가로 쓰기엔 부적절하다고 보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현재 백신 휴가가 법적으로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신 휴가가 법에 근거하지 않아도 광범위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며 “노동법에 없다고 해서 권리가 없는 건 아니다. 노동법에 없더라도 노사 간 협의를 통해 노동자들이 권리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기홍 직장갑질119 노무사 역시 “3차 접종을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적극적인 접종 참여를 호소하고 있는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백신 휴가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하고 비용을 정부에서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철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