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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일)

이슈 차기 대선 경쟁

여가부 존폐·병사 월급 인상… 표심 노려 ‘젠더 갈등’ 부추겨 [2022 대선 공약 탐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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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데이트폭력·스토킹 처벌”…윤 “성범죄 무고죄도 엄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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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후보 4인의 공약, 8회에 걸쳐 비교·평가

오는 3월9일 이후 한국 사회는 달라진다. 20대 대통령 선거로 누가 국정운영을 맡든 크고 작은 좌표 수정이 예정돼 있다.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달라질지 가늠하려면 후보자들의 공약을 나침반으로 삼아야 한다. 정책 대신 네거티브 대결이 도드라진 대선이지만, 선거가 끝난 뒤 모든 시민이 함께 살아갈 5년의 상은 결국 공약에 담겼다.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인 동시에 향후 국정운영의 평가 잣대가 될 약속이다.

경향신문은 24일부터 8차례에 걸쳐 ‘2022 대선 공약탐구’를 싣는다. 앞서 경향신문은 ‘2016 촛불시민이 본 2022 대선’ 기획으로 유권자 열망을 살피고, 공약탐구 온라인 게임인 ‘대선거시대’로 개괄적 상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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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에서는 8개 핵심 분야에 대한 후보자의 철학과 기조, 이를 투영한 구체적 정책을 전한다.

젠더 공약을 시작으로 코로나19 방역 및 지원 대책, 부동산 공급 및 세제, 거시경제·산업·자본시장, 기후변화, 복지·돌봄·장애인, 노동, 외교·안보·국방 분야를 살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 주요 정당 대선 후보 네 명을 대상으로 했다.


젠더. 20대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이다. 역대 대선에서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다. 젠더 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 역시 지대하다. 젠더 이슈가 성평등 제고가 아니라 젠더 갈등이란 구도로 부각되는 것도 특징이다. 그 영향으로 젠더 공약을 두고 대선 후보 간 입장차는 첨예하다. 대선에서 각 후보의 공약이 비슷하게 수렴된다는 통설은 젠더 분야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공약을 내놓느냐가 곧 어떤 지지층을 대변하느냐로 치환되고 있다.

각 후보가 젠더 갈등이란 프레임을 인정한 후 그 속에서 표를 얻기 위해 ‘젠더 전쟁’의 대리전을 뛰는 셈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냐, 존속이냐로 대표되는 대선 후보의 극명한 입장차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2030세대 남성 표심을 잡으려는 후보는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공식처럼 됐다. 젠더 공약이 어느 지지층을 대변하느냐의 지표가 되다보니 공약 쏠림 현상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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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서 미미했던 젠더 이슈
후보들 입장 달라 ‘첨예한 대립각’
여가부 존폐 관련 입장도 4인4색

■ 여성가족부 존폐 공약

대선 후보들 간의 여가부 존폐 공약 대결은 젠더 공약 전반의 상황을 요약해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청년 남성 표심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지난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여가부는 폐지하겠지만 기능은 이관하겠다는 절충안 수준이었다. 지난 6일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 봉합 시점 이후부터 여가부 폐지를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여가부가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등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윤 후보가 일곱 글자를 올린 그날 “여성가족부 강화”라고 SNS에 밝혔다. 여가부를 중심에 두고 전선이 펼쳐진 셈이다. 심 후보는 지난 20일 “(여가부를) 성평등부로 개편하고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여 명실상부 성평등 책임부처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평등부로 이름을 바꿔 해당 부처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여가부 개편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 후보는 여가부 존폐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는 지난 11일 “왜 청년들이 남녀로 편을 갈라 다투게 됐을까, 이게 정치에서 선거전략으로 사용할 만큼 격화됐을까. 정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앞서 (성)평등가족부로의 개편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안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여가부 존폐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는 여가부를 성평등인권부로 개편하겠다고 했다. 또 양성평등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로 격상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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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3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텔레그램 성착취 ‘n번방’ 운영자 갓갓(문형욱)의 무기징역 선고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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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n번방 사건 재발 방지 공약…불안한 2030 여성 안전에 방점
윤, “한국 사회가 우릴 잠재적 범죄자 취급” 남성들 주장에 동조
심 “비동의 강간죄 도입”…안 “강간죄 폭행·협박 기준 바꿔야”

■ 성범죄 무고죄와 비동의 강간죄

데이트폭력,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공약에선 대선 후보들의 엄벌 기조는 유사하다. 공약을 통해 얻고자 하는 지지층 성별이 누구냐에 따라 초점은 다르다. 이 후보는 지난 6일 젠더폭력 근절을 위한 4대 공약을 발표했다. 6일은 연인에게 폭행당해 숨진 황예진씨 관련 1심 판결이 나온 날이다. 이 후보가 내놓은 4대 공약에는 데이트폭력·스토킹·성폭력의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 강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무관용 엄벌, 디지털성범죄 근절 및 불안 해소 등이 담겨 있다. 이 후보는 ‘황예진법’으로 불리는 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도 약속했다. 이 후보는 황예진법 공약과 관련, “데이트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며 “그동안 사회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가볍게 여긴 채 법의 사각지대로 방치한 결과”라고 말했다. 스토킹범죄 반의사불벌죄 폐지, 디지털성범죄 전담수사대 설치, 디지털성범죄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독립몰수제 도입도 공언했다. n번방 사건 재발 방지 공약이다.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2030세대 젊은 여성들을 중심에 둔 정책으로 평가된다.

윤 후보는 이 후보가 젠더폭력 근절 4대 공약을 내놨던 6일 SNS를 통해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 공약을 내걸었다. 성범죄 처벌 강화라는 측면에서 이 후보와 다르지 않지만, 무고죄 처벌도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윤 후보는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감옥을 신설하겠다고 했다.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성폭력 무고죄를 제정하겠다고 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무고 조항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성범죄 관련 무고죄 처벌 강화는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일부 2030세대 남성들의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n번방 방지법과 관련해선 지난해 12월 SNS에 “ ‘n번방 방지법’은 제2의 n번방 범죄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반면, 절대다수의 시민들에게 ‘검열의 공포’를 안겨준다”고 적었다.

심 후보는 성적 자기결정권 존중, 조기 성교육 제도화, 성범죄 무관용이란 3대 원칙을 내걸었다. 대표적으로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전환하는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 제정도 약속했다. 수사기관의 불법촬영물 삭제 전담반 인력·예산을 늘리고, 현행 10년인 권력형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무관용 원칙을 세우겠다고 했다. 아동·청소년을 유인하는 온라인 그루밍의 점검을 강화하고 아동·청소년 형상을 한 리얼돌 수입·판매·유통을 규제하겠다고 했다.

안 후보도 심 후보와 마찬가지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약속했다. 안 후보는 지난해 11월 세계적인 기준과 맞지 않다면서 형법 297조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형법 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강간죄 기준을 폭행과 협박으로 규정한 법이다. 안 후보는 또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했다. 가해자가 합의나 고소 취하를 종용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접근금지 거리를 현행 100m에서 1㎞로 강화하는 안도 내놨다. 안 후보는 n번방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디지털성범죄 플랫폼 규제 강화도 약속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동영상이 올라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외국 수사기관과의 공조도 적극 활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병사 봉급 인상 레이스

이 후보와 윤 후보는 병사들의 봉급 인상 문제를 두고 경주를 벌이고 있다. 선공은 이 후보였다.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스마트강군 육성을 위한 5대 국방 공약을 발표하면서 병장 봉급을 2027년까지 200만원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병장 월급은 약 67만원이다. 윤 후보는 액수를 더 높였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이라고 SNS에 밝혔다. 200만원 기준은 같지만 취임 즉시 시행하고, 이등병부터 200만원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이다. 계급이 올라가면 수당 등이 반영돼 봉급은 더 높아진다. 심 후보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봉급을 인상해 최저임금을 달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는 이·윤 두 후보의 병 봉급 200만원 공약을 두고 “한마디로 200만원으로 청년들의 표를 사려는 매표행위”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대신에 군 전역 시 사회진출지원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지급하는 공약을 내놨다. 안 후보는 2020년 전역자 22만9000명을 기준으로 하면 2조29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여야 후보 4인, 병역 제도 개편엔 “모병제로 가야” 방향성 비슷
“타깃을 정해놓고 그 사람들만 공략…비전은 안 보인다” 평가

■ 병역제도 개편

병역제도 개편은 국방 공약인 동시에 젠더 공약으로 평가된다. 일부 남성들이 여성도 병역의무를 함께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야 후보들은 큰 틀에서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방향성은 비슷하다. 시기와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였다. 이 후보는 선택적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놨다. 임기 내인 2027년까지 징집병 규모를 15만명으로 축소하겠다고 했다. 부족해진 병력은 모병을 통해 전투 부사관 5만명, 또 행정·군수·교육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군무원 5만명을 추가해 보충한다. 윤 후보는 장기적으로는 모병제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윤 후보는 지난해 9월 국민의힘 경선 토론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20년 정도 지나면 모병제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안 후보는 준모병제를 방법으로 제시했다. 징집병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 절반을 전문 부사관으로 채우겠다고 약속했다. 제도의 이름은 다르지만 징집병과 모병한 부사관을 혼합한다는 점에서는 이 후보의 선택적 모병제와 유사하다. 심 후보는 ‘한국형 모병제’를 제안했다. 2029년까지 육군 기준으로 현재 18개월인 복무기간을 12개월로 줄인다. 이렇게 해서 부족해진 병력은 모병을 통해 확보한다. 징집과 모병의 혼합 형태로 운영하다 2030년부터 전면 모병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심 후보는 2030년부터 모병된 병사의 초봉으로 월 3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 여성·가족·청소년 공약

여성·가족·청소년 분야 공약은 후보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 후보는 여성·가족 5대 공약을 내놨다. 차별 없는 공정한 일터, 부모가 함께 돌보는 사회, 남녀 포괄 성·재생산 건강권 보장, 1인 가구 지원 및 다양한 사회관계망 존중, 한부모가정 아동 성장 지원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 고용평등임금공시제 도입, 육아휴직 급여액 현실화를 제안했다. 직장 내 성평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 제정, 모든 남성 청소년 HPV(사람유두종바이러스) 백신 접종 지원 등으로 성·재생산 건강권 보장도 내걸었다.

윤 후보도 최근 여성·가족 맞춤형 공약을 내놓고 있다. 산모마음 돌봄사업 공약이 대표적이다. 전체 산모를 대상으로 산부인과 산전검사를 실시하고, 산후 우울증을 막기 위해 정신건강 선별검사도 한다. 또 임신 1회당 60만원 상당의 마음돌보기 바우처를 제공키로 했다.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건강보험 적용, 가족돌봄 유급휴가 확대 등도 내놨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여야 대선 후보들의 젠더 공약을 두고 “슬로건만 있고 비전은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여야 대선 후보들은) 타깃 유권자들을 먼저 정해놓고 그 사람들을 공략하겠다는 목표만 있지 국가 대계는 보이지 않는다”며 “대선은 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반응 좋은 것만 골라서 슬로건이나 CF처럼 남발하고 있다. 총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는 성별을 고려한 정책을 추진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라면서 “이 후보는 (현 정부) 여성 정책을 계승하려는 부분은 있는데 적극적으로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남성들이 여가부 폐지를 외쳐도 정치권은 불만의 근본 원인을 살피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차별 흐름에 동조하는 태도는 민주주의의 퇴행 아닌가”라고 했다.

박순봉·김상범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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