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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이슈 '오징어 게임' 전세계 돌풍

'깐부' 아니었어?...북한 경비정은 왜 중국어선을 침몰시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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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공연 ‘불패의 사회주의’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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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은 흔히 '혈맹'이라고 불립니다. 1961년 체결된 '조중 우호 협력 및 호상 원조에 관한 조약'은 이 관계를 집약적으로 나타내주죠. 중국의 지원은 북한 체제와 정권이 존속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적 버팀목입니다. 애초에 중국이 6·25 전쟁때 개입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일 겁니다.

중국에도 북한 정권은 미국을 필두로 한 해양세력을 견제해주는 완충지대입니다. '순망치한'은 중국에 있어 북한의 존재 가치를 잘 나타내주는 말입니다. 2012년 김정은 정권이 들어설 때 장성택 숙청 등으로 잠시 갈등이 불거진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양쪽은 매우 끈끈한 공생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소위 '깐부'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런 북·중 사이에도 넘어선 안될 금도가 있나 봅니다. 정확히 8년 전 서해 북한 측 해역에서 불법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이 북한 경비정의 포격에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이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기로 유명하지만, 북한 역시 외화벌이를 위해 이를 용인하고 조업권을 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돌발 사건을 두고 양측 간 첨예한 공방이 벌어졌고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화했었다고 합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中어선 불법 조업에 北정부는 조업권 장사, 단속 해군은 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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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조업을 하다 인천해양경비안전서 전용부두로 나포돼 들어오는 중국어선. 북한에 조업료를 내고 인공기를 달았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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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단속을 해경이 하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에는 해경이 없기 때문에 해상 통제를 담당하는 해군이 불법 조업도 단속합니다. 또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어민들은 어선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모든 어선은 기본적으로 국가 소유입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어선들에 연료와 자재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성어기에 어로활동에 제대로 임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배가 낡은 데다 멀리 나가지 못해 북한 어장 대부분이 사실상 비어 있는 때가 많았죠. 이에 중국 측은 비용을 낼 테니 조업권을 빌려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외화가 궁했던 데다 어차피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었기에 거래가 성사됐습니다.

중국 어선들은 '조업 허가표'를 인민무력성 산하 강성무역회사를 통해 구매한 뒤 북한 경비정의 비호 아래 조업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측에서 건네진 외화의 80%는 북한 당국으로, 나머지 20%는 군부로 가다 보니 실제로 어선을 단속하는 일반 해군들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은 없었습니다. 이에 중국 어선들은 중국 맥주나 담배 등 뇌물을 따로 찔러주고 조업표에 허가된 기간보다 더 장기간 조업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잘 들어맞았던 겁니다.

현재 국제법상 조업권 거래는 금지돼 있습니다. 2017년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는 북한 해역에서 어업권 거래 금지를 명시하고 있죠. 그러나 법망을 교묘히 피한 거래가 여전하다는 의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中어선 도발에 격분해버린 북한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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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해상에서 활동중인 북한 해군 경비정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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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북한에서 특별한 달입니다.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김일성의 생일 '태양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한 영향이 북한 사회 구석구석까지 미치는데 해군들도 평소보다 불법 조업 등 해역 단속을 강화합니다.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북한 경비정은 여느 때처럼 서해상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단속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조업표를 발급받았거나 해군에 뇌물을 먹인 어선들이었지만, 유독 한 척이 아무것도 없이 조업 중이었습니다.

이에 북한 경비정이 접근해 조업표 또는 뇌물을 요구했지만 어선의 선장은 북한 해군을 "해적놈들"이라고 부르며 저항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뇌물을 챙겼던 사실을 모두 북한 상부에 일러바치겠다며 되레 으름장을 놨습니다.

경비정이 나포하려고 하자 어선은 선수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고 "멈추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는 경고에 돌아온 건 "북한 거지놈들"이라는 욕설과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는 제스처였습니다. 이에 격분한 북한 경비정은 어선을 향해 무차별 발포했습니다. 분이 안 풀렸는지 배가 침몰한 이후에도 포격은 한동안 계속됐다고 합니다. 어선에 탑승했던 중국인 선원 6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죠.

"최고존엄 모독에 대한 응징" 변명에 모든 게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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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람들이 가슴에 달고 다니는 김일성 부자 초상 휘장(쌍상).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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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은 곧바로 북한 측에 사건 조사와 관련자 처벌, 재발 방지를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경비정 책임자는 조사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진술했다고 합니다. "가슴에 있는 수령님과 장군님의 초상을 향해 욕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북한에서 간부는 물론 일반 주민들도 늘상 왼쪽 가슴에 충성의 표시로 김일성 부자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초상휘장)를 달고 다녀야 합니다. 초상휘장에 대고 조롱하는 중국 어선에 이성을 잃고 공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임자는 당시 현장을 촬영한 영상까지 증거물로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후 북한 측은 최고지도자를 모독한 데 대해 항의하고 이런 식이면 재발 방지도 약속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자세로 나왔습니다. 결국 해당 사건은 중국 정부가 자국 어선들에 주의를 주는 선에서 일단락됐습니다. 경비정 책임자는 문책과 처벌 대신 북한의 '최고 존엄'을 지킨 공로로 포상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 사건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불법 조업을 눈감아주고 뒷돈을 챙기려다 일을 키웠지만 '최고 존엄'을 위해서였다는 구실을 대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것을 보여준 일화로 남게 됐습니다.

한편으로 사건 이후 중국 어선들은 조업을 단속하는 북한 경비정에 매우 고분고분해졌다고 합니다. 한국 해경 단속반에 흉기를 휘두르고 충돌 공격을 일삼는 난폭한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죠.

봄 꽃게철 中어선 불법 조업 기승…韓정부 인수위 해경 출신 포함에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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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조업중이던 중국어선들이 해경 단속에 집단으로 저항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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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은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들이 창궐하는 단골 지역입니다. 특히 4~6월 꽃게철을 맞아 지난달에만 하루 평균 60척이 넘는 어선들이 한국 해역에 출몰하는 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은 최근 들어 예년 대비 50% 이상 건수가 늘었지만, 인력 한계와 중국과의 관계 등을 감안해 그동안 어민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중국 어선들은 최근 수십만 명에 이르는 해상민병대까지 조직해 해경으로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7일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기 상임위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꽃게철을 언급하며 서해 NLL 주변 수역 중국 어선 조업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어민들의 안전한 어로 활동 보장에 만전을 기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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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서해5도 특별경비단`이 불법 중국어선 선원들을 체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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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차기 정부 인수위에는 역대 최초로 해경 인사가 포함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공약 사항에 △해상 경비 단속 역량 강화를 위한 해양 경비함 증편 △중국 어선 불법조업 단속과 피해 어업인 지원 강화 등이 들어가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향후 중국 어선에 대한 강력한 대처를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죠. 이 같은 변화가 부디 보다 확실한 대책 마련으로 이어져 우리 해역에서 중국 어선들이 얼씬도 못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토요일 연재되는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이슈들을 살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다음 기사를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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