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가격 통제와 달리 ‘원가 절감’에 주력
유통구조 개선은 과거 방식과 유사한 사례
“서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민생과 관련한 장바구니 물가는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장바구니 물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의 특별대책이 필요하다”(이명박 전 대통령, 2008년 3월 3일)
14년 만의 ‘물가와의 전쟁’이다. 정부 출범 초 ‘고삐 풀린 물가 잡기’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주어진 것도 그때와 닮았고, ‘물가를 잡을 특별대책’을 곧바로 내놓은 것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2008년 3월 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를 열기 전 국무위원들과 직접 차를 타서 마시고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장바구니 물가를 잡기 위한 특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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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물가 대응, 어땠나
이명박(MB) 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3.6%였다. 한 달 후 3월엔 3.9%, 4월엔 4.1%, 5월엔 4.9%, 7월엔 5.9%까지 치솟았다.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돌발 변수가 추가됐지만, 당시에도 고유가와 곡물가격 급등이 국내 물가 상승의 주범이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30달러 안팎까지 뛰어올랐다. 미국의 경기침체에 따른 세계 경제 둔화 등 글로벌 경제 여건도 나빴다.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경유의 전국 평균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휘발유를 앞지른 것도 MB 정부 때였다.
MB 정부는 가격 통제에 적극적이었다. 고물가로 여론이 나빠지자 MB 정부는 서민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이른바 ‘MB 물가지수’였다. 쌀, 밀가루, 라면, 빵, 쇠고기 등 식료품은 물론 소주, 휘발유 등이 포함됐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MB 물가지수’ 품목들의 5년간 물가 상승률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6배에 달했다. MB 물가지수는 약발이 먹히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비슷한 형태로 부활했다. 지난 2월부터 매주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햄버거와 치킨 등 12개 외식 품목 가격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외식가격 공표제를 시행했다. 효과가 전혀 없다는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3개월 만에 폐지했다.
MB 정부는 공공요금 억제에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MB는 취임 직후 첫 국무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공공요금을 억제토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대중교통요금이나 공공요금에 관해서는 (인상 억제를) 한번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한전은 MB 정부 5년간 적자에 허덕여야 했다. MB 정부는 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했을 때는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앞세워 기업들의 가격 인상을 막으려 했다. MB의 “기름값이 묘하다”라는 언급 이후에는 정유업계에서 한동안 휘발유·경윳값을 내리고, 통신업계도 통신비를 인하했다.
수출을 독려하기 위한 고환율 정책은 MB 정부의 대표적인 실패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전문가들의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외부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커 고환율 정책을 쓰면 수입물가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민생활이 어려워진다”(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경고에도, MB 정부 경제팀은 수출 중심의 성장에 방점을 찍고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런 인위적 환율 상승 때문에 석 달간 원유 수입에 무려 2조원이 추가로 들어갔다. 단기 부양책에 집착하는 구시대적 경제정책으로 국민 부담만 가중시켰다”고 강만수 경제팀을 비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MB 정부 경제팀은 수출 중심 성장의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물가가 더 폭등했다”며 “친기업 정서가 강한 현 정부에서는 과거 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아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적극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가용수단을 총동원해 국민의 생활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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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원가 절감’에 방점
14년 후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물가 대응은 어떨까. 현 정부가 지난 5월 30일 발표한 민생안정 대책은 직접적인 가격 통제에 나섰던 MB 정부의 대응 방식과 달리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원가 절감에 방점을 찍었다.
식용유·돼지고기 등 주요 식품 원료 7종에 대해 연말까지 할당관세 0%를 적용한다. 수입 커피와 코코아 원두에 붙는 부가가치세(10%)도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해 원가를 약 9% 낮춘다.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젓갈류, 두부 등은 내년까지 부가세를 면제한다. 정부는 할당관세 확대와 부가세 면제 조치로 약 6000억원 규모의 세수 감소를 예상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를 강제로 끌어내릴 방법이 없고 만약에 그렇게 하면 경제에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가량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물가 인하 추정치에서도 보듯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밀의 경우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수입하는 국내 식품업체들이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이미 무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부가세를 별도로 환급받고 있는 제조업체들도 많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에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만큼 부가세를 면제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먹는 커피값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취약계층에 대한 현금성 재정 지출로 급한 불을 끄고, 향후 수요자 측 물가상승 압력 상승과 자산 양극화 심화 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집값 안정에 주력하는 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물가 안정을 도모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 정부의 물가 대응과 MB 정부의 방식이 유사한 사례도 제법 눈에 띈다. MB 정부는 곡물, 농업용 원자재, 석유제품 등 80여개 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조기에 인하한 바 있다. 출범 첫해인 2008년에 유류세를 인하하고,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유가 환급금이나 유가 보조금을 지급했다. 현 정부가 유통구조 개선을 강조한 것도 MB 정부 때와 비슷한 대응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5월 31일 국무회의에서 “중장기적으로는 유통구조, 경쟁의 강화를 통해 구조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는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MB도 당시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물품은 유통구조만 바꿔도 (가격이 인하)된다”면서 정유사 공급단가의 주 단위 공개, 석유제품별 실제 판매가격의 실시간 공개 등 석유제품 시장 유통구조 개선을 강조한 바 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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