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만 명. 올해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를 떠난 우크라이나인의 숫자다(유엔난민기구의 6월 28일 기준 추정치). 그들은 살기 위해 조국을 등지고 차에, 기차에 올랐다. 무작정 걷기도 했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난민 신분이 됐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역을 1일(현지시간) 찾았을 때 발견한 물품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국경을 넘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다가 놓고 갔거나 버리고 간 물건이다. 키이우=신은별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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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키이우역을 1일(현지시간) 찾았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어쩌면 다시 발을 디디지 못할 고향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눈물을 떨궜을 곳. 전쟁 초기엔 탈출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비통한 울부짖음이 역사와 플랫폼을 가득 메웠지만, 이젠 괴괴하기만 했다.
역을 지키고 있는 건 우크라이나인들이 떠날 때 남긴 흔적이었다. 기차에 미처 싣지 못한 '예비 난민'들의 소지품이 여기저기 방치돼 있었다. 유모차, 책가방, 여행용 트렁크, 이불…. 누가 언제 찾으러 올지 몰라 치우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날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듯,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슬픈 얼굴을 담은 사진도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3월 6일 키이우역에서 기차에 탑승한 아이가 가족으로 보이는 남성을 향해 웃으라는 듯한 제스처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런 모습은 7월 키이우역에서 볼 수 없었지만 그때의 장면들이 담긴 사진들이 키이우역에 전시돼 있다. 키이우=AFP·연합뉴스·신은별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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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 폴란드는 세계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했다. 4일(현지시간) 기준 453만 명을 받아들였다. 우크라이나 서쪽 국경과 인접한 폴란드 프셰미실역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얼마 전까지 '난민 열차'였을 기차는 조용했다. 한 중년 여성은 "떠날 사람은 이미 다 떠났다. 지금까지 안 떠났다는 건, 앞으로도 안 떠날 것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국경에 가까워질수록 기차 안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기차는 30분에서 1시간씩 수시로 멈춰 섰다. 정차 이유를 설명하는 안내방송도 없었다. 한 승객은 "전쟁 이후 출국 절차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라는 것만 안다"고 했다.
기차에 탄 채 출국 심사를 받았다. 여권 검사를 위해 열차에 오른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눈빛은 바짝 얼어 있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남성 승객들의 여권을 오래 샅샅이 봤다. 전쟁 이후 출국이 금지된 18~60세 남성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어쩐지, 좌석이 60여 개인 객차에 남성은 겨우 2~4명만 타고 있었다. 그들은 "당국의 출국 허가를 받았다"고 병사들에게 거푸 소명했다.
우크라이나 국경과 맞닿아 있는 폴란드 프셰미실역에 마련된 구호단체 부스에서 받은 커피와 우크라이나어가 적힌 안내종이. 부스는 전쟁 이후 마련된 것으로 간단한 빵과 커피, 물 등을 제공한다. 프셰미실=신은별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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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셰미실역 역시 조용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미국에서 왔다는 자원봉사자는 2일(현지시간) 기자와 만나 "전쟁이 5개월째 접어든 요즘은 우크라이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 310만 명이 최근 다시 국경을 넘었다. 타향에선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죽어도 고향에서 죽기 위해서다.
폴란드에 도착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여전히 환대받고 있었다. 이국 땅에 내린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은 간이 쉼터를 만들었다. 샌드위치, 케이크, 커피 등을 무료로 제공했다. "폴란드어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문구가 우크라이나어로 적힌 팸플릿도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역 한쪽엔 침대들이 줄지어 있었다. 난민들의 임시 거처라고 했다. 갈 곳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이었다.
역사 곳곳에 깃들어 있는 조용한 서글픔. 누군가의 흐느낌과 깊은 한숨. 전쟁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키이우∙프셰미실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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