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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인재양성’이 초래했던 이공계의 위기와 프라임사업의 저주···반도체 인재양성 방안의 미래는[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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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운데)와 관계부처 간부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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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점점 부족해지고 있는 고급 기술인력 확보를 위해 이공계 대학 정원을 매년 4000명씩 늘리기로 했다. 이 가운데 인력부족이 심각한 전자·기계 등 첨단산업학과 정원을 매년 3000명 늘리고, 증원이 동결돼 온 서울 소재 대학 가운데 이른바 능력이 있는 대학에도 첨단학과 증원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인재양성 관련 방안’의 내용과 꼭 닮은 이 기사는 30년 전인 1991년 3월에 나왔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산업계 인력이 부족하다며 이공계 정원을 대폭 확대했다. 이에 따라 서울 주요 대학 공대 정원이 대폭 늘어났다. 1990년 771명이었던 서울대 공과대학 신입생이 1995년 1341명으로 증가했다.

급격히 늘어난 공대생들의 진로는 한정적이었고 이는 2000년대 초반 ‘이공계의 위기’로 돌아왔다. 1990년대 후반 40%대 초중반이었던 대학수학능력시험 자연계열 응시자 비율은 2001년 26.9%, 2002년 20.3%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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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노태우 정부의 이공계 대학 정원 증원 보도. KBS뉴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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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산업계가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책무”라고 주문하자 교육부는 지난 19일 대학 첨단학과 정원을 늘려 반도체 인력을 10년간 15만명 키우겠다는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을 내놨다. 산업수요에 따라 대학 정원을 조정했다가 시장 상황이 변하면서 대학은 신입생 충원난을, 대학생들은 취업난을 겪었던 과거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예산 규모도 아직 확정되지 않는 등 대책 곳곳에서 대통령 지시에 따라 급조한 흔적도 보인다.

부족인력 추계 오락가락에 “인력 공급과잉 우려”… 예산도 아직 협의중


특정 산업의 인력수요에 대비해 대학 학과를 신설하거나 정원을 조정한 사례는 많았다. 멀게는 1980년대 중공업 중심의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점 전국 국립대를 중심으로 조선공학과 등이 생겨났다. 2000년대 초반에는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대학들이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 분야 입학정원을 크게 줄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인문계·이학계열 학과를 줄이고 공학계열 학과를 확대하는 대학을 선정해 지원금을 준 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이 추진됐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사업비 6000억원이 투입돼 ‘단군 이래 최대 대학지원사업’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선정 대학 중 상당수 지방대들이 공대 정원을 대폭 늘렸다가 몇 년 뒤 신입생 대규모 미달 사태를 맞아 ‘프라임사업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재양성 방안이 또다시 인력수요와 공급 사이 ‘미스매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필요인력 추계가 오락가락한다. 정부는 이번 방안에서 향후 10년간 반도체업계에 추가로 필요한 인력이 12만7000명이라고 내다봤다. 1년에 1만2700명꼴이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의 ‘K반도체 전략’ 발표 당시 추계된 부족인원은 연평균 1510명이었다. 지난달 교육부 포럼에서는 2032년까지 석박사급에서만 5565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치가 나오기도 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고무줄 수치가 인력 과잉공급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가 최근 청주공장 증설을 보류하는 등 기업들은 반도체 경기변동 등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IT분야 등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인력 공급과잉, 실업자 양산 등의 문제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는 추후 인력 공급과잉이 발생하더라도 다양한 첨단 분야로 진출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굳이 증원을 하지 않더라도 융합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는 뜻이라 모순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도 했지만 ‘얼마나’ 할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 방안에서 제시한 대규모 연구개발(R&D)사업 2건은 모두 이전 정부가 발표한 것이다. 1조96억원 규모의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개발사업은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시스템반도체산업 육성전략에 포함됐고, 4027억원 규모의 PIM반도체 개발사업도 올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미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인재양성을 위해 예산이 얼마나 투입될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부처별로 내년도부터 인재양성에 투자되는 예산을 산정해놓고 재정당국과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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